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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이시너드클럽 Oct 11. 2021

진짜 나는지, 안 나는지 모를 냄새와의 왈츠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부터 개인적 거리두기를 잘 지켜온 편입니다.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를 아-주 넓게 두는 편인데요,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사적인 이유가 있어 솔직하게 털어놓긴 어렵지만 모르는 사이 하나가 추가됐더라고요. 오늘은 용기 내어 이에 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에디터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예민한 성격이 됐습니다. 일부로는 아니고요, 원체 남 눈치 보는 성향인 데다 오랜 기간 말없이 키보드만 쳐나가다 보니 시나브로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어떤 생각에 대해서는 거의 병적일 정도입니다. 가장 심한 건 냄새와 관련이 있는데, 바로 입 냄새입니다. 나는 구취가 난다, 아니 구취가 심하다, 아니 구취가 너무 심해 이 공간을 가득 채워버릴 것이다, 뭐 이런 망상입니다.


과거에도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으면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지금만큼 심하진 않았어요. 그렇다 보니 퍼스널 스페이스란 부동산이 너무 커져버린 겁니다. 심지어 그린벨트로 묶어버린 거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일종의 강박증이라고 하더군요. 지식인 고인물은 진단과 함께 결국 타인에게 미움받는 게 두려워 그렇다는데(그는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이 또한 문제인게 착한 사람 컴플렉스가 있는 나란 사람한테는 더욱더 쥐약이라는 겁니다. 딜이 뻥튀기돼 치명타로 박히거든요.


누구나 순간적으로 입냄새가 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부끄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정말 냄새가 나는 거라면 양치나 가글을 자주 하거나 (담배를 끊거나) 군것질을 피하며 구강 컨디션을 좋게 유지할 수도 있겠고요. 문제는 이미 강박이 됐기 때문에 그런 조치 자체가 별 도움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멘탈 문제죠. 


심지어 아주 친한 사람들한테는, 부끄럽지만, 내 강박에 대해 털어놓은 듯 냄새가 나면 꼭 얘기해주세요, 양치 하고 올게요, 말하지만, 심지어 그들은 실제로 안 나요, 진짜 안 나는데, 말하지만, 개인적 거리두기 단계는 좀처럼 하향 조정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말 나는지, 안 나는지 헷갈린다고요. (물론, 나도 한 공간을 가득 메울만큼은 아니겠지요?)


사실 내가 너무 입냄새에 예민하기 반응하기 때문에 -  상대방이 말하는데 입을 꾹 다물고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마스크를 써버리거나 너무 자주 물을 마시거나 큰 물컵을 물고 있거나 고개를 돌려 버리거나 입을 가린 거지만 코를 막은 거처럼 오해되거나 - 상대방이 오히려 나 입냄새나나,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나와 그는 전혀 우아하지 않은 왈츠를 추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이 글은 나를 아는 사람들, 나를 알게 될 사람들에게 쓰는 사용설명법과도 같은 겁니다. 그래야 기분이 나아지 거든요. 언젠가 그린벨트로 묶어둔 공간을 풀어 여러분을 초대할게요. 그땐 꼭 쥐고 있던 퍼스널 스페이스란 부동산을 무상으로 분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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