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보이지 않는 선

팀장_Part 2. 말하지 않는 신호들

by 직장인C

그 이후로 나는 의식적으로 J의 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관찰한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나는 기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폈다.


회의에서 누가 먼저 말하는지.
누가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지.

의견이 정리되는 순간, 시선이 어디로 모이는지.


그건 숫자로 남지 않는 정보들이었다.

J는 늘 침착했다. 회의에서는 지나치게 나서지도, 그렇다고 빠지지도 않았다.

문제는 회의가 끝난 뒤였다.

회의실을 나서며 J는 L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었다.


“L님, 아까 그 부분은 조금 더 정리해서 다시 이야기해봐요.”

톤은 부드러웠다.
지적이라기보다는 조언에 가까웠고,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좋은 파트장’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L의 반응이 늘 일정했다.


“아, 네. 제가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설명도, 질문도 없었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사람처럼.

그 모습이 이상했다.
L은 원래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회의에서 JD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아주 작은 제안이었지만,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이야기였다.

J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회의는 그대로 넘어갔다.
그날 이후, 그 의견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며칠 뒤, 같은 주제에 대해 J가 정리된 안을 가져왔다.

JD의 의견과 매우 비슷했다.
구조도, 방향도.

나는 JD를 흘끗 보았다. JD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날 회의가 끝난 뒤, JD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보통이라면 한마디쯤은 했을 것이다.

“아까 제 의견이 반영된 것 같아서요.” 혹은 “회의 때 말씀 못 드린 게 있어서요.”

하지만 JD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팀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 되고 있다는 걸.

누군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귀찮아서일 수도 있고,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말하지 않는 대신 정해진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

고개를 끄덕이고, 짧게 대답하고, 회의가 끝나면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J가 있었다.

L은 점점 더 말을 아꼈다.

보고를 할 때도 필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마치 “이 이상 말하면 안 된다”는 선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한 번은 내가 이렇게 물었다.

“L님,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정리하셨어요?”

질문 자체는 아무 의도도 없었다. 순수한 확인이었다.

그런데 L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숨을 고른 뒤 말했다.


“J님이 이렇게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요.”

나는 그때 처음으로 확실한 불편함을 느꼈다.

왜 모든 판단의 주어가 J일까.

L의 판단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드러나지 않게 숨겨지고 있었다.


나는 그날 메모를 남겼다.

공식 기록도, 보고도 아닌 그저 나만 보는 작은 메모였다.


‘팀 내 의사결정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자발성보다 반응이 먼저 나온다.’


아직은 문제라고 말할 수 없었다.
증거도 없었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했다.


이 팀은 조금씩 숨 쉬는 방식이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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