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 및 주변 소국들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20
ㅡ 마한 및 주변 소국들 ㅡ
우리가 알고 있는 ‘마한’은 오늘날의 전라남·북도 지역에 존재했던 부족연맹체로, 54개 소국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백제 성장과정에서 병합되면서 고대국가로까지 발전 하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소멸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삼국시대 이전, 삼한(마한, 변한, 진한) 가운데 마한에 대한 우리 역사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에 일부 언급될 뿐이다.
변한과 진한의 경우, '삼국사기' (신라 중심)나 '일본서기' 등에서 비교적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고, 위치 비정이나 고고학적 자료도 풍부한 반면, 마한 '소국'들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이는 '삼국사기'의 백제본기 기록 이 부실하고, 백제 초기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한 소국들 정확한 위치조차 특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축적되면서 마한 실체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전라남북도 자치단체'와 연구기관 중심으로 마한 관련 유적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는 마한 지역 정체성과 문화자원으로 복원 · 정비하려는 '조례'까지 만들어 적극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발굴·보존 측면에서도 성과 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마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익산 쌍릉, 나주 반남 고분군, 광주 신창동 유적, 담양 대전 태목리 유적>
이들 유적에서는 마한이 중국, 일본 및 한반도 내 다른 지역과 활발한 교류를 했던 흔적이 나타 난다. 특히 중국계 유물 출토는 마한이 고립된 부족연맹체가 아닌 국제적 교류 네트워크 일원였음을 보여준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학자들은 마한이 단순한 연맹체가 아니라 중앙집권적 성격을 지닌 국가체제로 발전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마한의 영토 범위 역시 우리 가 아는 것보다 넓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반도 남서부(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충청도, 경기 남부까지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백제가 원래 마한 54개국 중 하나였다고 주장 하며, 백제기원과 성장을 마한의 연속선상에서 해석하려 한다.
이는 삼국 건국연대에 대한 전통적 견해와 충돌하며, 역사 해석에서 민감한 쟁점이 된다.
실제로 마한을 독립된 고대국가로 재조명하려면, 백제와 신라의 실질적인 국가 형성시기를 3~4세기경으로 보는 시각이 보다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런 해석이 받아들여질 경우, '삼국시대'는 실질적으로 '열국시대'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따라 학계 일부에서는 '삼국 이전 시대'를 아울러 ‘원삼국시대’ 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백제는 건국 초기부터 마한 내 여러 소국을 차례로 복속시키며 점차 마한 중심세력을 흡수해 나갔다. 이 과정은 단순한 병합이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력을 병행한 통일정책이었다.
특히 3세기 후반, 백제 8대고이왕 시기에는 마한 중심국가로 추정 되는 '목지국'(目支國)(현재 익산 지역으로 비정)을 정복했다. 목지국은 마한 연맹 중심지로서, 당시 남부 한반도의 정치·문화 중심지였다.
'삼국사기'에 고구려에서 남하한 '비류'와 '온조'형제가 마한 목지국 진왕(辰王)에게 정착 허락을 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학자들은 목지국 위치를 천안, 아산 등으로 비정 하기도 한다.
반면, '삼국지위서동이전'에서는 마한의 맹주를 '월지국'(月支國) 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 역사학자들은 '목지국'과 '월지국'을 동일한 국가로 보는 견해가 대세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월지국이 전남 영산강 유역, 특히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 박사 고향으로 전해지는 '영암'지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목지국(=월지국)의 정복은 백제가 마한을 통합해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백제 13대 왕인 '근초고왕'(재위 346~375)은 재위 초기에 여전히 백제에 완전히 복속되지 않은 마한 소국들을 군사력으로 정복하면서, 마한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로써 마한은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이 시기의 마한 병합은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백제가 한반도 남서부의 지배적 세력으로 부상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백제 는 국력을 기반으로 한강유역에 진출, 고구려·신라와의 삼국경쟁, 해상교역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4세기 중엽 근초고왕 시기는 사실상 우리가 아는 '백제' 완성기 이며, 이를 실질적인 백제건국 시점으로 보자는 견해도 있다.
백제는 이후 중국 '동진'(東晉), '왜'(倭) 등과 외교·무역을 확대 하며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이 시기 나오는 백제 ‘요서경략설' (遼西經略說)’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기까지 약 40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복을 넘어 한반도 남부통일과 국가형성의 역사적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상은 백제와 마한의 관계, 그리고 고대 한반도의 역동적인 통합과정을 정리해 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 역사 속 에서 <잊혀진 국가로 남아있는 부여> 편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