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22

고구려 전기 왕들과 고국천왕 '진대법' 실시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22

ㅡ 고구려 전기 왕들과 고국천왕 '진대법' 실시 ㅡ


고구려 건국 초기의 정치·사회 구조는 절대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섯 개 주요 부족(씨족)으로 이루어진 '귀족연맹체' 형태였다.


각 부족은 독립적인 정치·사회적 조직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은 서로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고구려 초기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구려의 다섯 부족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1. 계루부(桂婁部) – 왕족이 속한 지배층 부족으로, 왕위는 주로 이 계루부 출신이 계승 하였다.


2. 절노부(絶奴部) – 군사적 기반을 담당한 부족으로, ‘왕비족’으로도 알려져 있다.


3. 순노부(順奴部) – 행정을 담당한 부족으로, 정치 체계를 뒷받침했다.


4. 관노부(灌奴部) – 제사와 종교를 담당한 부족으로, 국가의 의례를 주관했다.


5. 소노부(消奴部) – 농업과 경제 활동을 담당하여 고구려의 경제적 기반을 지탱했다.


이러한 5부족 귀족연맹체는 시간 이 지나며 점차 중앙집권적 체제 로 통합되었다.


특히 제9대 고국천왕(故國川王) 시기에, 고구려는 5부족 중심의 지배체제에서 벗어나 관료제 중심 통치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는 고구려가 보다 조직화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고구려 초기 왕들 업적 정리>


사실 우리가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고구려 초기 왕은 몇 되지 않는다. 아래는 간략한 정리이다.


1. 동명성왕 (주몽)

재위: 기원전 37 ~ 기원전 19


고구려의 건국자. 부여 출신으로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세움.


2. 유리명왕

재위: 기원전 19 ~ 기원후 18


주몽의 아들. 수도를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옮김.

‘황조가’, ‘주몽설화’ 등으로도 알려져 있음.


3. 대무신왕 (무휼)

재위: 18 ~ 44


유리왕의 아들. 고구려 세력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 주인공 호동왕자의 아버지이며, 낙랑국을 복속시킴.


4. 민중왕

재위: 44 ~ 48


삼국사기에는 대무신왕의 동생, 삼국유사에는 아들로 기록.

기록이 적어 구체적 업적은 알려져 있지 않음.


5. 모본왕

재위: 48 ~ 53


대무신왕의 또 다른 아들. 정치적 혼란이 있었던 시기로 평가됨.


6. 태조대왕

재위: 53 ~ 146


고구려의 중흥을 이끈 왕. 영토를 확장하고 왕권을 강화함.

예맥족과 부여를 정복하여 고구려 기틀을 다지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시킴.

‘태조(太祖)’라는 존칭은 그가 고구려의 중시조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후 왕위가 '고(高)'씨 계루부로 고정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다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태조왕은 7세에 즉위해 93년 동안 통치했다는 기록이 있어 논란이 많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중국기록과도 차이가 있어 '삼국사기' 신빙성을 문제 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김부식 역시 이러한 논란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이나, 왕계 계보를 흩뜨리지 않기 위해 당시 전통 기록을 그대로 따랐다는 해석도 있다.


7. 차대왕

재위: 146 ~ 165


태조왕의 동생(또는 장자라는 기록도 있음). 형제들과 권력 투쟁이 있었던 왕.


8. 신대왕

재위: 165 ~ 179


차대왕의 동생. 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름.


9. 고국천왕과 <을파소 진대법>


고국천왕(故國川王, 재위: 179~ 197)은 고구려 전기 왕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다.


그의 통치 시기에는 사회 개혁과 왕권강화가 동시 진행 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바로 <을파소 진대법 (賑貸法)>이 있었다.


고국천왕은 신분이 낮았던 무명의 인물 ‘을파소’를 발탁해 최고 관직 국상(國相)에 임명하고, 그를 통해 ‘진대법’을 시행했다. 이는 고구려 초기 사회복지제도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진대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봄철 식량이 부족한 농민들에게 국가가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수확 후 이를 갚도록 한 제도이다.


<진대법의 효과>


1. 빈민 구제: 가난한 백성들의 봄철 기아를 막음.


2. 농업 생산성 증가: 안정적인 식량 확보로 농민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됨.


3. 사회 안정화: 경제적 어려움 에서 오는 혼란을 예방함.


4. 왕권 강화: 귀족들 고리대금과 노비화 남용을 제어하며 왕권을 강화함.


진대법은 고국천왕 사후에도 고구려의 중요한 사회제도로 자리잡았으며, 국가 체질을 바꾸는 중요한 개혁으로 평가 받는다.


<진대법 시행의 정치적 배경>


당시 귀족들은 곡식을 빌려주는 대가로 높은 이자(고리)를 요구 했고, 농민이 갚지 못하면 노비로 삼아 사적 권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고국천왕은 이러한 귀족들 횡포를 억제하고, 국가 주도 구휼정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농민보호 라는 명분을 동시에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귀족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이는 일부 반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국천왕 개혁은 고구려가 보다 조직적이고 안정적인 국가로 발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고국천왕'은 안타깝게도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이로 인해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다.

바로 그의 부인 ‘우씨황후’가 두 번이나 왕비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TV드라마로도 방영 되었다


고국천왕이 사망하자, 우씨황후 는 그의 동생 중 한 명을 왕으로 추대하고 그와 재혼하여 다시 왕비가 되었다.


현대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고구려 사회에는‘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라는 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제도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이어서〈우씨 황후, 두 번 황후가 되다>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21화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