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초기 역사와 '고이왕' 1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25
ㅡ 백제초기 역사와 '고이왕' 1 ㅡ
백제초기 역사는 백제를 건국한 ‘온조’와 그의 형 ‘비류’, 그리고 두 사람의 어머니 ‘소서노’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지만 백제초기 역사로 전해지는 사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중국역사서를 통해 내용을 유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역사서로, ‘신라 중심의 역사서’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백제에 대한 기록이 부족 하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백제시조 '비류'와 '온조'혈통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전해진다.
우리는 학창시절 대부분,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시조 '동명성왕 주몽'의 아들들로 배워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두 사람 모두 주몽 아들이 아닌, 주몽 두 번째 부인 '소서노'가 데려온 아들들 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이 둘의 아버지는 소서노 첫 번째 남편 '우태'이다.
또 다른 견해는 첫째 비류는 우태 아들이고, 둘째 온조만이 주몽 친아들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이러한 다양한 설들 고려할 때, 백제건국 실질적 시조는 오히려 '소서노'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남편과 두 아들을 이끌어 세 나라 (고구려, 백제, 그리고 비류국)를 건국하도록 한 여성은 세계사적 으로도 드문 존재다.
당시 기록과 정황을 살펴보면, 이 세 가지 설 중에서 세 번째 설, 즉 비류는 우태 아들이고 온조만이 주몽 아들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서노는 주몽 첫 번째 부인 아들 이자 고구려 2대왕 되는 유리왕과 왕위다툼에서 밀려,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데리고 남하하게 된다.
이후 비류와 온조는 각각 따로 나라를 세웠으며, 결국 온조계가 비류계 통합하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온조계와 비류계는 백제멸망 때까지 왕위계승을 두고 계속해서 갈등을 겪었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은 아버지를 둔 친형제였다면 이렇게까지 다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온조계와 비류계는 성씨 마저도 다르게 썼다는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백제에서 ‘우씨(優氏)’ 로 보이는 인물들이 '고이왕' 시기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고이왕계'가 '비류계'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 고이왕 시기 내법좌평 '우두' (優豆)
- 고이왕 동생이자 내신좌평 '우수' (優壽)
- 11대 비류왕의 동생이자 반란자 였던 내신좌평 '우복'(優福)
- 25대 무령왕 때의 대달솔 '우영' (優永)
특히 고이왕의 형제 2명 등장하는 점에서, 이들은 모두 ‘우태’를 시조 로 하는 비류계 '우씨왕족'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점에 따라 고이왕을 기점 으로 '비류계'가 '온조계'를 누르고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는 설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설로 인정받는 부분은,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만 확실하게 비류계라는 점이다.
이처럼 백제초기 역사는 건국시조 혈통, 성씨에 대해서조차 명확한 기록이 부족할 정도로 사료가 미약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백제초기 역사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백제초기 성장과 수도 변화>
백제 초창기 수도는 '하남 위례성' 이었으며, 고구려와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하였다.
초기백제는 고구려와 문화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보였고, 삼국 중 하나로 점차 성장해 나갔다.
이 시기 백제는 한강유역을 중심 으로 한반도 중서부지역을 지배 하였고, 고구려, 신라, 그리고 중국 '동진·남조'와 외교관계를 맺으며 외교력을 강화하였다.
특히 백제는 중국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나아가 이를 일본에 전파하는 문화적가교 역할도 수행하였다.
백제는 수도 위치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시기로 구분된다.
1. 건국 초기 및 한성 시대 (기원전 18년 ~ 475년)
2. 웅진 시대 (475년 ~ 538년)
3. 사비 시대 (538년 ~ 660년)
<백제초대부터 고이왕까지 왕계>
'고이왕' 이전까지는 시조 '온조'와 형 '비류'를 제외하면 널리 알려진 왕들이 거의없다. 우리 기억 속 에는 전혀 없는 왕들이지만 이들 각 왕들도 시대에 맞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다음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제1대부터 제7대까지 왕들이다. 간략히 살펴보겠다.
1. 온조왕 (기원전 18년~28년)
백제시조. 고구려시조 주몽 아들 이라는 전통적인 설이 있으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설이 존재한다. 한강유역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하였으며, 초기에는 작은 연맹체로 시작해 점차 세력을 확장하였다.
2. 다루왕 (28년~77년)
온조왕 뒤를 이어 2대 왕 되었고, 영토확장과 내정강화를 통해 국가 기틀을 다졌다. 군사력 강화하고 외적침략을 방어하는 데 기여 하였다.
3. 기루왕 (77년~128년)
내부통치 안정시키고 외부침략을 방어하면서 국가발전을 이끌었다.
경제와 문화의 점진적인 발전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4. 개루왕 (128년~166년)
한반도 내 백제 정치적입지를 강화했다. 주변 소국들과 외교 관계를 통해 왕권 안정화에 기여 하였다.
5. 초고왕 (166년~214년)
백제 해상세력을 키우고, 마한 지역을 공격하여 영토확장을 이루었다. 군사력을 증강하며 국력을 높이는 데 힘썼다.
6. 구수왕 (214년~234년)
백제 군사력과 영토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고이왕시대 도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7. 사반왕 (234년)
구수왕 아들이나 나이가 너무 어려 정치를 할 수 없었고, 결국 고이왕에게 왕위를 넘겨주며 재위 1년 만에 폐위되었다.
<고이왕시대 도래>
서기 234년, 백제는 '고이왕시대' 를 맞이한다.
고이왕은 백제의 제8대 왕으로, 초고왕의 동생이다. 형 구수왕이 사망한 뒤, 구수왕 아들 사반왕이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으나 정치적 판단력 부족으로 폐위 되고,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
'고이왕'(재위: 234년~286년)은 백제체제를 정비하고 국가기틀을 다진, 백제초기 가장 중요한 왕으 로 평가된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왕이기도 하다.
고이왕 주요업적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