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소설- 조선의 아이돌 15

제15화 변방의 북소리

by 초롱초롱 박철홍

제15화 변방의 북소리


조선의 바람은 언제나 한양에서 불어 나와, 변방의 나무까지 흔들었다. 한양엔 아직 봄볕이 들었지만 북방은 이미 피로 물들고 있었다.


함경도의 산줄기 아래서 불이 올라왔다. 병마절도사 이시애가 반기를 들고 관군을 베었고 성벽 위로 연기가 솟았다.


이 소식은 겨우 사흘 만에 한양까지 닿았다. 그러나 더 빠른 것이 있었다. 한 장의 편지였다.


창덕궁 희정당 뒤편, 바람이 불지 않는 편전.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자가 있었다. 무관 이극진이었다.


그는 피로 젖은 갑옷을 걸친 채 세조 앞에 붉은 봉투 하나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거칠게 외쳤다.


“전하, 반역은 북방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칼끝이 함경도라면 그들의 의지는 한성의 붓 아래 있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봉투.

세조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붉은 밀봉이 이미 누군가의 피처럼 보였다.


마침내 세조는 도장을 떼어냈다.


[신숙주, 한명회가 강효문과 뜻을 함께하여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그래서 신은 강효문, 설정신, 김익수를 죽였습니다.

이 모든 일의 뿌리가 조정 내 모신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을 벌하고자 군사를 이끌고 한양으로 향합니다. — 이시애.]


세조는 말없이 편지를 접었다.

눈꺼풀을 감자 검은 파도가 안에서 일렁였다.


이시애… 그가 북방의 늑대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이제 그는 사자(使者)를 자처하고 있었다.


편전을 지키는 병사들은 숨을 죽였다. 세조는 곧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걷다 벽의 그림자 앞에 멈춰 섰다. 어깨너머로 말하듯 중얼였다.


“신숙주와 한명회가 반역을 꾀했다면 조정의 절반이 적이다.”


그의 음성은 작았지만 피처럼 무거웠다.


세조는 작년부터 병을 앓고 있었다. 피부가 헐고 진물이 났다. 밤이면 등 뒤가 가려워 옥침에서 몸을 뒤척였다. 그는 손톱으로 등을 긁으며 생각했다.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이라면, 더 늦기 전에 베어야 한다."


결정은 곧 명령이 되었다.


같은 날, 또 하나의 상소문이 도착했다. 묵은 벼루에서 벗어난 듯한 힘 있는 글씨였다.


[신은 북방의 백성을 알기에 반란의 불씨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압니다. 부디 신에게도 군무(軍務)를 맡기시어 죽음으로써 전하의 은혜에 보답하게 하소서. 출정하여 목숨을 걸고 반란을 진압할 것을 맹세합니다.]

ㅡ 유자광.


한낱 하급 무관. 그러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세조는 기억을 더듬었다.

수년 전, 무과 시험장에서 남이와 검을 겨루던 젊은 얼자(孽子).

그때 그는 패했지만 눈빛은 꺾이지 않았다.


그 유자광이 상소를 올린 것이다.


세조는 그를 불렀다.


“유자광이라 하였느냐.”


그는 무릎을 꿇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이번 난 진압에 목숨을 걸겠다 하였는가.”


“예. 기회만 주신다면.”


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은 이미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남이 아래 부장으로 붙이겠다. 그대가 진실로 공을 세운다면 그 자리가 진실이 될 것이다.”


그 말에 유자광 눈동자가 반짝였다. 유자광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자였다.


충성은 칼 위에 놓인 이름표일 뿐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공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자라는 낙인을 지우는 일이었다.


이튿날 새벽, 성문이 열리고 말발굽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귀성군이 총사령관, 남이가 대장군. 유자광은 그 아래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총사령관 귀성군이 많은 장병들 앞에서 소리쳐 외쳤다.


“반란은 반드시 진압된다. 하지만 그보다 두려운 건 조정 안의 칼날이다.”


귀성군 옆 말 위의 남이는 검은 철갑을 입고, 검 대신 명령서를 들고 있었다. 그 종이 한 장이 수천의 목숨을 이끌었다.


남이의 곁에 한 부장이 물었다.


“조정 안에도 적이 있다는 뜻이십니까?”


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세조가 내린 밀서를 가슴에 품었다. 그 안에는 단 두 줄.


"신숙주와 한명회를 감금하라.

혐의가 드러날 때까지 그 입을 봉하라."


남이는 검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은 이미 벼려진 칼처럼 차가웠다.


신숙주는 궐 안에서 곧장 붙잡혔다. 붉은 도포가 금색 조복을 덮고 그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이게 무슨 짓인가! 주상께서 날 모른단 말인가!”


그는 발버둥 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억울함이 아니라 배신감이 그를 붉혔다.


한명회는 달랐다.

조용히 웃었고 도리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시애… 꽤 재미있는 수를 두었군. 허허.”


그 웃음 속엔 칼날이 숨어 있었다.


그 시각, 함경도.

이시애는 흰 말을 타고 깊은 산 아래 서 있었다.

가을바람이 부는 초입. 검은 구름이 그의 머리 위를 덮었다.


“한양이 나를 어떻게 보겠느냐.”


묵묵히 선 측근이 입을 닫았다.

그러자 그가 스스로 대답했다.


“반역자라 부르겠지. 그러나 나는 외적을 몰아내고 조정 역적들을 베려는 자다.”


그의 눈빛은 산처럼 무거웠다.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반역인지...


조선의 역사서에는 늘 뒤늦게 적혔다.


편지 한 장.

말 한마디.

그것이 사람의 목을 가르고 운명을 뒤바꾼다.


누군가는 그 혼란을 ‘반역’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기회’라 불렀다.

그리고 어떤 이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검 대신 붓을 들었다.


세조는 그날 밤 홀로 중얼거렸다.


“바람이 변방에서 불 때, 궁궐은 제일 먼저 흔들린다.”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14화박철홍소설- 조선의 아이돌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