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과 근구수왕 — 왕권과 바다를 지배한 시대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42
ㅡ 백제최고전성기 근초고왕 3 ㅡ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 왕권과 바다를 지배한 시대)
백제 13대 근초고왕(재위 346~ 375)은 흔히 <백제의 전성기를 연 왕>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강력한 정복군주로만 기억한다면 절반만 본 셈이다. 근초고왕은 백제의 왕권 체제를 완성하고, 대외 해상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문화와 무역의 중심으로 백제를 세운 인물이었다.
그의 통치는 백제의 기틀을 다진 '고이왕', 백제의 부흥을 이룬 '무령왕'과 더불어 백제사를 잇는 가장 중요한 정점이다.
1. ‘근초고’라는 이름의 의미
사료마다 그의 이름은 다르게 기록된다. 일본 '고사기'에는 ‘조고왕'(照古王), '일본서기' 에는 ‘초고왕'(肖古王), 중국 '진서'에는 ‘여구'(餘句)로 등장한다.
백제 왕실이 ‘부여씨' (扶餘氏) 였음을 감안하면, ‘여구’는 ‘부여 구'(句)를 축약한 형태로 보인다.
또한 ‘근초고(近肖古)’ ‘근'(近)은 ‘가까울 근’ 혹은 ‘큰’을 뜻하는 접도로 선대 초고왕과 구분 짓는 왕호로 붙여진 듯하다. 이는 왕위 계승권을 다시 ‘초고왕계’로 되찾았다는 정치적 선언이기도 했다. 즉, ‘근초고왕’ 이라는 이름 자체가 왕권 강화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2.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 그리고 담로제
근초고왕은 즉위하자마자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정비했다.
'진'씨(眞氏) 가문과 혼인을 통해 왕권기반을 다졌고, 지방에는 왕족이나 중앙관리를 파견하는 ‘담로제'(檐魯制)를 실시했다.
이 제도는 지방세력을 통제하고 왕의 직접 통치권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백제가 단순한 연맹체를 넘어 중앙집권적 국가로 변모한 시점이 바로 이 시기다.
3. 남으로 마한, 북으로 평양성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근초고왕 은 사방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남쪽으로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 잔여세력을 복속시켜 전라도 일대 완전히 장악했고, 낙동강 서쪽 가야세력까지 영향권에 들게 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충돌했다.
369년 '치양성'(雉壤城, 황해도 배천) 전투를 시작으로 371년에 평양성 공격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 전투로 백제는 대방고지(帶方故地)까지 영토를 넓히며 한반도 서부를 완전히 지배했다.
백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시기가 바로 근초고왕 시대였다.
4. 바다를 건넌 외교와 무역
근초고왕의 또 다른 무대는 ‘바다’였다. 그는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기 위해 신라와 우호관계를 맺었고, 중국 '동진'(東晉)과 외교를 수립하여 ‘진동장군영 낙랑태수’에 책봉되었다. 이것은 백제가 한반도 남부의 실질적 지배자로 중국에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그는 또한 낙랑·대방군이 고구려 에 멸망한 뒤 공백을 이용해 '요서'(遼西) 지역에 진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했다.
실제 영토 경영이었는지, 혹은 무역거점 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백제가 요서일대에서 활동한 것은 분명하다.
무역로는 중국 황해 연안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 열도로 이어졌고, 근초고왕은 그 해상 네트워크를 완전히 장악했다.
5. 칠지도와 일본으로 건너간 학문
근초고왕 시기 백제 문화 수준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다. 대표적 상징이 현재 일본
'이소노가미 신궁'에 보관된 ‘칠지도' (七支刀)이다.
이 칼의 명문에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다”는 내용이 있어, 근초고왕이 일본에 우호와 위상을 동시에 과시한 증거로 꼽힌다.
또한 백제는 일본에 학문과 문화를 전파했다. '왕인'(王仁)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 일본에 유학사상의 씨앗을 뿌렸다.
'아직기'(阿直岐) 는 한자를 가르쳐 일본 문자문화의 문을 열었다.
이들은 모두 일본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 고대국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근초고왕 문화정책은 단순한 외교를 넘어, 백제를 ‘문화수출국’으로 만든 문명전략 이었다.
6. '서기'(書記) 편찬과 역사의식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자 근초고왕은 박사 '고흥' (高興) 에게 명하여 백제의 역사서인 '서기'(書記)를 편찬하게 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정리가 아니라, 왕실 정통성 확립하고 왕권 신성함을 제도적으로 선포한 사건이었다.
국가 정체성을 문자로 세운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7. '근구수왕'과 백제 전성기 마지막 불꽃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왕'(369 ~375)은 태자시절부터 부왕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즉위 후에도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하여 백제 전성기를 유지했으나, 이미 북쪽에서는 고구려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고국원왕' 아들 '소수림왕'은 철저한 제도개혁으로 국력을 키웠고, 이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대에 이르러 고구려는 백제를 압도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근구수왕 통치는 백제전성기 마지막 불꽃 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백제 기개는 오랫동안 남아 훗날 '무령왕'과 '성왕'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8. 맺음말
이와 같이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시대 백제는 단순히 한반도 서남부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왕권’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했다.
그 결과 백제는 동아시아 문화· 무역·외교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근초고왕 치세는 왕권과 해양, 두 축으로 백제 황금시대를 열었고, 근구수왕은 그 불꽃을 마지막까지 지켜냈다.
그 시대 바람은 이미 천오백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의 역사 속에서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이어서 신라의 최고전성기 편이 계속됩니다.
– 초롱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