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지금도 흐른다 890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0
ㅡ 이재명대통령 '환단고기' 논쟁, 놓치고 있는 것들 ㅡ
최근 이재명대통령의 정부부처 업무보고 장면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나 또한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업무보고를 보면, 대통령이 장관이나 실무진에게 세부적인 사안까지 직접 질문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지방의회에서 업무보고를 직접 경험해 본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의원들은 상임위원회별로 제한된 몇 개 부서를 담당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된다. 방대한 자료를 소화하고 정책의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방대한 국정전반을 대상으로 사안 본질과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이재명 대통령 학습태도와 집중력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한 성실함을 넘어 국정 운영 기본자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발언은 그 자체로 무게가 크기 때문에, 맥락이 생략된 채 일부 표현만 부각되면 곧바로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기 쉽다.
최근 불거진 ‘환단고기’ 논쟁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 과정에서 “환단고기는 문헌 아닌가”라고 언급한 대목을 문제 삼으며,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중국에 쎄쎄 하시더니 '동북공정'보다 더한 역사 환상을 국정에 끌어들이려 하느냐”는 등 강한 표현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대통령 전체발언 맥락을 살펴보면,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정사(正史)로 인정하거나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역사를 어떤 시각과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시적 언급한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준석대표는 발언 결론과 맥락을 외면한 채,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신봉하는 것처럼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정치적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발언의 전체 맥락을 기준으로 해야 논쟁이 성립한다. 일부 표현만 떼어내 과장하거나 왜곡한다면, 그것은 정책과 국정 운영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정쟁을 위한 정쟁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이준석 대표가 거론한 중국의 ‘동북공정’과 '환단고기'의 관계를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추진한 국가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로,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로 인식돼 왔다. 이는 단순한 학술논쟁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와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정치·외교적 사안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강행한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한반도 정세다.
중국은 북한체제가 붕괴할 경우, 고구려·발해를 중국 역사로 규정해 두면 ‘역사적 권리’를 내세워 북한지역에 개입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는 내부통합 문제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며,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이 국토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조선족이 밀집한 만주·간도 지역 역시 잠재적 불안 요소다. 만약 남북통일이 이뤄지고 역사적 명분까지 결합될 경우 중국으로서 대응논리가 약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곧바로 동북공정을 추진하며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경계했다.
이처럼 동북공정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전략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과정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은 “중국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동북공정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우린 어떤 연구와 대응을 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환기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다만 '환단고기'는 그 자체로 매우 논쟁적인 사서다.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환국·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민족 고대제국사를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를 담은 책으로 신봉하지만, 외부사료와의 교차검증이 부족해 위서로 보는 시각도 강하다.
'환국'과 '배달국'은 기존 어떤 고대사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다.
실질적 역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고학적 유물, 외부문헌과 교차 검증 등 국제학계가 수긍할 수 있는 증거가 필수적이다.
우리만의 주장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나 역시 환단고기가 사실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근거 없는 신화적 과장은 오히려 단군신화마저 훼손할 위험이 있다.
환단고기를 믿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신앙처럼 무조건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사료와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의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정치적 역사 왜곡을 지속할 때, 우리는 냉정하고 치밀한 연구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환단고기 역시 그 검증과정 속에서 다뤄져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을 환기하기 위한 문제 제기에 가까웠다.
논쟁은 자유롭되, 왜곡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논쟁이 정치적 소음이 아니라 국가적 자산이 되기 위한 최소한 조건이다.
— 초롱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