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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12·3 비상계엄 1년, 우리가 끝내 놓지 말아야 할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87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87


ㅡ12·3 비상계엄 1년, 우리가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기억들ㅡ

(어둠을 밝힌 것은 결국 국민의 불빛이었다)


1년 전 오늘, 우리의 일상은 한순간에 뒤집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상계엄’이라는 낯설고도 서늘한 단어는

오래 묻어두었던 악몽이 갑자기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뉴스 화면 속 풍경은 현실이 아닌, 마치 다른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머릿속은 멍했고, 가슴은 툭 하고 꺼져 내려갔다. 분노, 두려움, 허탈함이 뒤엉킨 커다란 어둠이

우리 앞에 깊고 길게 드리워졌다.


그러나 그 어둠 한가운데서 가장 먼저 흔들림 없이 빛난 것은

정치도, 제도도, 언론도 아니었다.

바로 국민이었다.


누군가는 차를 세우고, 누군가는 손전등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여의도와 광화문은 다시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졌고, 그곳에 모인 불빛들은 거대한 강물처럼 흘러넘치며 도시 밤을 밝혀냈다.

그날 장면은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단단하며,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장엄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계엄이 걷힌 뒤 1년은 쉽지 않았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진실의 파편들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치와 사회는 흔들렸고, 국민은 마치 롤러코스터 위에 묶인 채

어지러운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들려온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말은

입안에 남은 쓴맛처럼 오래 남았다.


“욕은 먹어도 1년 지나면 국민은 모두 잊고 다시 뽑아준다.”


그 말은 우리 마음에 조용한 질문 하나를 꽂아 넣었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쉽게 잊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상처와 어둠, 그리고 반복되는 역사를 똑바로 응시하는 깨어 있는 시민인가?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윤상현 같은 사람들에게 개·돼지로 취급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 중요한 길목마다 쿠데타는 그림자처럼 나타나 나라 방향을 비틀어 왔다.


고구려 연개소문 쿠데타에서 시작해, 이성계 위화도 회군, 이방원 왕자의 난, 수양대군 계유정난, 중종·인조반정,

그리고 현대사 5·16, 12·12, 5·17 군사쿠데타까지—


역사는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남겨두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번쩍였고, 실패한 쿠데타는 반역이라는 낙인 아래 짓눌렸다.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역이지 않습니까.”


영화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 배우가 전두환을 연기하며 내뱉은 이 대사는 과거검찰이 공식적으로 남긴 말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그 문장은 많은 국민의 마음을 깊이 할퀴었다.


<권력은 무엇이며, 정의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민들이 다시 일어섰고,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졌으며,

반란의 책임자들에게 단죄가 내려졌다. 그러나 그 단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사면’이라는 얇은 종이 한 장 아래에서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 평온한 말년을 살아갔다.


성공한 쿠데타를 제대로 벌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한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적 파장을 남긴 성공한 쿠데타가 12·12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꼽는 최악의 성공한 쿠데타는 '인조반정'이다.


명분조차 빈약했던 인조반정은

백성들에게 정묘·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안겼고, 반정세력 강요한 경직되고 오도된 성리학은

조선을 오랜 세월 옥죄며 답답한 틀에 가두었다.


그 그림자는 지금까지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비극, 12·12 군사반란은 우리 현대사 가슴을 움켜쥐듯 흔들어 놓았다.


내가 보기에 역대 최악의 실패한 쿠데타는 바로 지난해 '윤석열 친위쿠데타' 시도다.


아직 재판과 진상 규명이 남아 있지만, 역사기록은 이 사건을

‘실패한 쿠데타 대표적 사례’로 남겨둘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도는 이상한 정권 조기붕괴를 불러오며 오히려 민주주의 회복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윤석열은 민주주의를 되살린 "극우보수 세력 엑스맨”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12·3 비상계엄의 배경에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특검을 막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로 재해석될 것이다.

기괴한 풍자극이 될 수도, 비틀린 사랑 이야기로 바뀌어 드라마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1년 전 12·3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견고한 장치를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날이다.


<그날 어둠 속에서 나라를 지킨 것은 군대도, 정치도 아니었다.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촛불 하나의 빛은 아마 약할 것이다. 그러나 수만 개의 촛불이 모이면 그 빛은 밤을 뒤흔들고, 역사를 바꾸며 민주주의를 다시 세운다.


우리는 이미 그 힘을 증명했다.

수년 전에도, 그리고 1년 전에도.


그리고 우리가 이 기억을 끝내 놓지 않고 붙잡아 두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스스로를 지켜낼 것이다.


— 초롱박철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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