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영광, 국민의 불행 -군국주의와 전쟁의 시대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84
ㅡ 삼국통일의 시대 29 ㅡ
(나라의 영광, 국민의 불행 -
군국주의와 전쟁의 시대)
삼국통일 전쟁 함성이 산과 들을 뒤흔들던 <전쟁의 시대>, 당시 사람들은 매일 삶 속에서 절망과 두려움을 품어야 했다.
이제 ‘나당전쟁’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삼국통일의 시대>를 거치며 펼쳐진 <전쟁의 시대>를 되짚어보려 한다.
<전쟁의 시대>는 단순히 왕과 군대가 맞붙은 전쟁의 연속이 아니라, 백성들 일상과 운명을 뒤흔든 격동의 시간이었다.
특히 전쟁 승패와 영토 변화 뒤에 숨은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처참한 삶과 고단함을 보다 생생히 이해해 보며 우리는 그 시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을 세계사 속 유사한 전쟁의 시대인 <군국주의 시대>와 비교해 보면,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어,
한 시대가 남긴 의미와 교훈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오늘 아래 한 편으로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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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기록 속에서 <영광의 시대>란 대부분 <전쟁의 시대>와 겹쳐 있다.
<삼국통일의 시대>가 그러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며 민족사에 큰 전환점을 남겼지만, 그 과정은 오랜 전쟁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징발되었고, 농토는 황폐해졌으며, 생존 자체가 위협받았다. 통일은 국가업적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낸 백성들에게는 <고통의 시간> 이었다.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안시성 전투 역시 후대에는 찬란한 승리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전쟁들 또한 끊임없는 동원과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고, 그 부담은 늘 평범한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영웅 이름은 남았지만,
백성들 삶은 기록되지 않았다.
세계사도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로마 카이사르, 몽골 칭기즈 칸, 프랑스 나폴레옹>은 각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이룬 팽창은 광대한 영토와 함께 수많은 파괴와 고통을 동반했다.
제국의 확장은 곧 당시 백성들의 희생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실패한 역사로 규정되었지만, 여전히 은밀하게 <영광의 시대>로 소비되는 <독일의 히틀러 시대와 일본의 도조 시대>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시기들 공통점은 군인이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 모든 기능이 전쟁과 팽창을 위해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국가는 강해졌을지 모르나, 국민의 삶은 철저히 국가에 예속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 행복이란 막연한 감정이 아니다. 전쟁 공포로부터 자유,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일상, 사상과 표현의 최소한의 자유, 그리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안정성이다.
군국주의 국가는 이러한 조건을 구조적으로 파괴한다.
우리 역사와 가장 깊게 얽힌 군국주의 국가는 '몽골'과 '일본'이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군국주의는 가장 최근까지 우리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남겼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국가로 도약하며 군국주의의 길을 선택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승리는 일본에 제국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 결과 한반도는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군부가 사실상 국가를 지배했고, 돌이킬 수 없는 제국주의 확장 정책에 매달렸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 일본은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차지했다.
당시 일본 영토 외형만 보면 일본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기였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총동원 체제가 일상화되었고, 물자는 통제되었으며, 비판은 곧 반역이 되었다.
국가는 강대해졌지만,
국민은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일본의 그 끝은 1945년 패망이었다.
천황의 항복 방송은 국가 붕괴를 의미했지만, 동시에 전쟁 종료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일본 국민들은 패전의 절망과 점령에 대한 공포,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미군정 최고사령관 '맥아더'의 천황존치와 전범 최소화 유화 정책은 일본사회를 빠르게 안정시켰다.
다만 이 변화는 일본내부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는 아니었다. 냉전이라는 국제질서, 미국의 전략적 판단, 한반도 분단 구조라는 특수한 환경이 맞물린 결과였다.
일본에게는 행운이었지만, 한반도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일본이 군국주의를 포기하고 전쟁을 중단했을 때, 비로소 일본 국민 일상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국가적으로는 전쟁패망이라는 가장 초라한 시점이었지만, 국민 개개인에게는 오히려 생존과 안정, 예측 가능한 삶이 가능해진 출발점이었다.
이것은 ‘패망이 행복을 가져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군국주의 붕괴와 전쟁 종식이 일본 국민 삶을 회복시켰다는 의미다.
물론 이는 국가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이 아니다.
국가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최소한 힘을 갖출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힘이 누구를 위해, 어디를 향해 사용되느냐에 있다.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국민을 위한 국가는 국민 삶을 지탱하지만, 권력과 영광을 위한 국가는 결국 국민을 소모한다.
결국 국가영광과 국민행복은 자동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영토 크기나 군사력, 지도자 영웅적 이름이 아니라, 국민이 전쟁의 공포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가가 국가성공 기준이 되어야 한다.
<강한 나라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다>
<삼국통일 시대> 또한 이런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