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3

고려영토' 문제와 '환단고기' 논란 1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3

ㅡ '고려영토' 문제와 '환단고기' 논란 1ㅡ


고려영토를 말하자 하면 일부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전제가 있다.


"고려는 고구려 후손으로 원래 우리는 고구려 이전부터 대륙의 주인이었고, 고려영토도 대륙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자주 소환되는 책이 있다. 바로 '환단고기'다.


먼저 분명히 밝히지만 환단고기는 고대사서가 아니다. 1911년에 간행된 근대에 쓰인 문헌이다.

저자로 알려진 '계연수'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았다. 그 시대에 민족적 자존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을 수 있다.

그 동기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동기와 진실은 별개 문제이다.


그럼 '환단고기'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보자.


1. '고대 한민족제국'이라는 허상


환단고기식 주장에는 공통된 전제가 있다. 상고시대에 이미 단일한 ‘한민족’이 존재했고, 그 민족이 대륙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만 던지겠다.


상고시대에 과연 오늘날 의미하는 ‘한민족’이 존재했는가?


상고시대나 고대에는 부족과 정치 집단이 있었다. 혈연과 문화적 연대는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 민족개념은 18~19세기 유럽에서 민족국가 탄생 이후 형성된 것이다.


고대부족연맹체를 현대 민족국가 개념으로 재단하는 순간,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신화가 된다.


2. '넓은 영토가 곧 위대함'이라는 사고


환단고기식 역사관의 또 다른 특징은 강역 집착이다.


강역은 영토가 넓으면 위대하고, 좁으면 초라하다는 사고이다. 이 사고는 '제국주의'가 사용하던 방식과 비슷하다.


일본제국주의(일제)는 '만주국' 건국과정 에서 과거 고구려 강역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고구려가 만주를 차지했었고, 조선은 고구려를 계승했다. 이제 조선은 일제가 합병했으니 만주 또한 우리 일제 땅이다."


일제는 역사를 팽창의 논리로 소비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오늘날 환단고기식 '대륙지향강역록'은 이 구조를 반복한다.


“옛날에 우리가 지배했으니 우리의 역사다.”


이 논리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과거 몽골이 지배했던 한반도는 몽골사인가?


로마가 지배했던 유럽은 전부 로마사인가?


강역중심역사관은 결국 힘의 논리로 귀결된다. 바로 제국주의 사관이다. 제국주의 일제강점기에 우리 한민족 역사가 심하게 왜곡되었다고 비난하면서 그 논리를 일정 부분 따르고 있는 것이다.


3. 발해를 보라.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구려 구성하는 집단은 '말갈계' 세력이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


즉 고구려는 복합적 정치체였다.

단일혈통국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발해를 우리 역사로 본다. 왜인가?


영토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계승 의식, 문화적 연속성, 사료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환단고기가 주장하는 '환국'과 '배달국'은 환단고기 빼고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동시대 외부사서에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고학적 유물도 없다. 단지 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명과 비슷한 곳만 몇 군데 있을 뿐이다.


4.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이 숨겼다는 주장에 대하여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일제가 역사를 왜곡했다.”


일제강점기 학계에 식민사관 영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까지 모든 학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은

음모론에 가깝다.


현대 역사학은 문헌학, 고고학, 인류학, 자연과학 분석까지 동원하는 교차검증 체계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모두 공모해 어떤 거대한 상고제국을 숨긴다는 주장은 헛된 망상에 가깝다.


식민사관은 학설논문으로 반박하면 된다. 실제 역사기록이나 증거로 설득하면 된다.


단지 환단고기식으로 주장하는 지도만 그린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5. 한민족 자존감은 허구 위에 세울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과 함께 민족자존회복 흐름 속에서 상고사 확대해석이 주목받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당시 '단'이라는 책에 빠져 그런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군부독재시절 상처 입은 사회는 위대한 과거를 갈망했다.


그러나 민족적 자존감은 확인된 역사 위에 세워질 때 단단해진다.


근거 없는 한민족 팽창서사는 잠시 통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때 민족적 상처는 더 커진다.


6. '역사'와 '신앙'을 구분하자.


신화는 한 사회가 공유해 온 상징과 서사를 담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삼국사기'에는 수록되지 않고 '삼국유사'에만 수록된 '단군신화'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 기원과 정체성을 상징해 온 이야기다. 이러한 점에서 단군신화는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상징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족’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역사적 변화 속에서 형성되고 재해석되어 온 정체성 개념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한민족’이라는 동일성 역시 고려 이후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 에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 속 ‘민족’을 오늘날의 '한민족' 개념과 동일한 실체로 간주하는 것은 개념의 시대적 차이를 간과하는 해석일 수 있다.


문제는 신화를 상징이나 문화적 유산의 차원을 넘어, 곧바로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려 할 때 발생한다.


역사로 주장되는 순간, 그것은 신앙이나 상징의 영역이 아니라 증거와 검증의 영역에 들어간다. 역사학은 사료 비판과 객관적 검증을 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단군신화를 수록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서사가 실증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믿음이나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믿음을 공유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믿음 그 자체가 곧 학문이 될 수는 없다. 학문은 신념이 아니라 비판과 검증을 통과한 주장 위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7. 결론


고려영토 문제를 말하고 싶다면 먼저 환단고기식 대륙제국 신화를 내려놓아야 한다.


역사는 크기로 증명되지 않는다.

강역으로 위대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고조선, 삼국, 고려 실제 역사만 으로도 충분히 복잡하고 역동적인 과거를 가지고 있다.


허구를 보태지 않아도 된다.


다음 편에서는 이 원칙 위에서 고려영토에 대해 정리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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