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903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903
ㅡ 왕과 사는 남자 —
(역사와 소설 그리고 영화)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관객 수는 빠르게 늘고, 사람들은 극 중 단종을 ‘단종오빠’라 부르며 친근하게 소비한다. 영화는 대중이 기대하는 ‘재미’라는 요소를 충분히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늘은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보다는, 이 영화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왕과 사는 남자>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사극, 그것도 실존인물을 다룬 정통사극이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퓨전사극과 달리 정통사극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닌다. 물론 극적 긴장감과 서사 전개를 위해 일정 부분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질 수는 있다. 이는 영화 장르적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인물 본래 모습을 본질적으로 변형하는 수준에 이를 때 발생한다.
영화는 강력한 시청각 매체이기 때문에 관객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남긴다. 특히 역사적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관객의 경우, 영화 속에서 재현된 인물 모습이 실제 역사적 인물 모습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인식이 작품 속 설정과 감정선에 의해 재구성되고 소비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실존인물을 다루는 정통사극은 흥행성과 오락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중함과 균형감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재미와 상상력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인식에 미칠 영향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극 중 '엄흥도'는 권력에 맞서는 인간적 양심의 상징처럼 그려진다.
또한 '한명회'는 오랫동안 권모술수 화신처럼 기억되어 온 한명회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등장한다.
이쯤 되면 우리에게 묻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 모습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1. 역사보다 강한 서사
우리는 종종 역사 기록을 ‘진실’, 영화와 소설을 ‘허구’라고 구분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중국 나관중이 쓴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는 실제 역사서인 진수 '삼국지'보다 독자들에게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 결과 '유비'는 인덕의 화신이 되었고, '조조'는 간웅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물 상은 상당 부분 소설적 재구성의 산물이다. 실제 역사 속 인물과는 상당히 다르다.
문제는 이런 소설적 허구가 나쁘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반복적으로 재생산 되면서 집단기억으로 굳어질 때 발생 한다.
중국 역사소설 '삼국지연의' 속 인물들은 실제 역사 속 인물들 평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고, 그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우리 인식을 고착화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사료 속 인물들이 곧 절대적 진실이라는 뜻도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조차도 특정시대 정치구조와 가치관 속에서 작성된 기록이다. 사관은 제도적으로 독립되어 있었지만 그 역시 당대 권력과 언어, 도덕기준에서 정말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결국 기록과 서사는 모두 시대의 ‘맥락 속 산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을 신앙처럼 믿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성격을 구분하는 일이다.
2. 엄흥도 - 충절상징으로 재탄생
영화 속 ‘엄흥도’는 유배된 단종을 인간적 으로 보살피는 평민촌장으로 그려진다.
그는 권력의 폭력성과 대비되는 양심적 인물, 즉 도덕적 저항의 상징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사료에 따르면 엄흥도는 지방 아전 이자 ‘호장’이었다. 이는 양반도 평민도 아닌 중인신분으로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군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중간행정관리이다. 지방행정을 실무적으로 책임진 인물 이었으며 국가권력을 지역사회에 전달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위치에 있던 인물은 백성들에게 친근한 존재라기보다 경우에 따라 양반 보다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직책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영화에서 처럼 그가 평민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유배된 왕 단종과 함께 웃고 울었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낮다. 당시 유배된 임금은 정치적으로 극히 민감한 존재였으며 그를 관리·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지방관리가 사적인 친분을 쌓는 행동은 자신 지위와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엄흥도' 실제역할은 단종을 인간적으로 돌보는 동반자라기보다 국가 명에 따라 유배생활을 감독하고 감시하는 책임자였을 것이다. 영화적 재해석은 극적 효과를 위한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사료가 전하는 인물상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유해진'이라는 뛰어난 배우는 '엄흥도'를 실존인물처럼 만들어 버렸다.
단종 사후처리 문제에서도 기록은 엇갈린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예를 갖춰 장례를 치렀다고 적혀 있다.
반면 '야사'에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세조가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 면서 금했다. 이 때문에 며칠씩이나 단종시신이 강물에 떠다니며 까마귀 밥이 될 뻔했다. 이에 보다 못한 엄흥도가 아들 셋과 함께 단종시신을 몰래 건져 산속 깊은 곳으로 옮겨 장례를 치러 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엄흥도는 가족들 모두 데리고 도망쳐 그 후손들은 장장 241년 동안 숨어 지낸다.
어느 쪽이 완전한 진실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엄흥도 ‘충절서사’가 단종장례를 치러주고 나서 정치적으로 재호명되었다는 점이다.
엄흥도가 장례 한번 치르고, 그 후손들은 숨어 살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지 241년 후에야,
교조적 유학자 '송시열'이 엄흥도 충절을 이야기하며 복권을 주청 드린다. 이에 '숙종'이 엄흥도를 복권시키고, '충의공' 이라는 시호도 내리면서 후손들을 찾아 관리로 등용까지 한다.
엄흥도가 한 행위로 인해 그의 후손들 가운데는 무려 241년 동안 신분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서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하루아침에 운명이 뒤바뀐 후손도 나타났다.
이처럼 한 사람의 선택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후손들 삶이 극적으로 엇갈렸다는 사실은 인생의 부침이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어쨌든 엄흥도 후손들의 반전은 단순한 역사복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조적 유학자 송시열이 '충절'이라는 유교적 가치를 국가 이념으로 강화하려는 정치적 흐름과 맞물려 있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군주였던 숙종에게도 단종의 상징성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두 조화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엄흥도'는 한번은 야사의 충신이 되었고, 241년이 지나서 다시 한 번은 정치적 상징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영화 속에서 또 한 번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우리가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속에서 감동한 '엄흥도' 그 얼굴은 역사 속에서 세 번은 덧칠된 얼굴이다.
3. 한명회 - 악인의 외모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명회'는 오랫동안 권력욕에 사로잡힌 책략가, 심지어 기형적 외모의 인물로 묘사되어 왔다. ‘칠삭둥이’ 설화는 그를 왜소하고 추하면서 음모론적 간신 상으로 그리는 데 활용되었다.
드라마에서도 한명회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외모부터 그러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헌을 보면 전혀 다른 기록도 존재한다.
"얼굴이 잘생기고 체구가 커서 바라보면 우뚝하여 눈에 띄었다"
(魁顏偉幹, 望之屹然)
ㅡ 서거정, 한공(韓公) 신도비명 병서(神道碑銘 並序) ㅡ
"공은 큰 키가 옥처럼 섰고 거동과 풍도가 빼어났다"
ㅡ 중국사신 예겸, 압구정 기문 ㅡ
이에 비해 직접적으로 그를 추하게 묘사한 사료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를 괴이한 외모의 권신으로 기억할까?
연산군 대에 한명회는 부관참시를 당한다. 패배한 정치세력 상징이 된 인물은 도덕적으로만이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추하게’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대중매체는 이러한 이미지를 반복 재생산해 왔다.
악인은 추해야 한다는 무의식.
그 단순한 도식이 한 인물 얼굴까지 바꿔버린 셈이다.
이번 <왕과 사는 남자> 영화가 최소한 한명회 외형만큼은 문헌기록에 가깝게 재현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물론 극적장치로 한명회가 영월까지 가서 하는 허구행위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사실 재현과 영화적 상상은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
4. 역사 속 '영웅'과 '악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유정난 주도자 '수양대군' '한명회' '신숙주'를 절대적 악으로, '단종'과 '사육신'을 절대적 선으로만 규정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쉽지만 위험하다.
권력투쟁 한복판에서 그들은 각자 선택을 했다. 거기에는 정치적 계산도, 명분도, 야심도, 두려움도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갈렸을 뿐 인물을 선과 악 흑백으로 가르지 않는다.
계유정난 같은 상황은 우리 역사 속, 중국역사 속, 세계사 속에도 흔한 일이다.
우리가 역사 인물을 평가할 때 최소한 세 겹은 구분 해야 한다.
1차 역사기록,
2차 후대 정치적 해석과 재구성
3차 이후 대중문화 재창작
이 구분 없이 형성된 인물상은 또 다른 신화가 된다.
영화는 예술이다. 그리고 허구적 상상물이다.
감정이입과 극적긴장을 위해 각색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영화가 아니라 그 영화를 본 우리가 그것을 사실처럼 소비하는 태도다.
역사는 고정된 초상이 아니다. 끊임없이 덧칠되는 초상화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색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색이 언제, 왜 덧칠되었는지를 아는 일이다.
영화는 또 하나의 색일 뿐이다.
그 색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우리는 그 아래의 밑그림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오늘 <왕과 사는 남자> 란 영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본 총평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영화로서 아주 재미있었다. 지금 상황을 잘 이어 가서 천만을 훌쩍 넘겨 새로운 천만영화가 탄생했으면 좋겠다.
이어서 이 영화를 감독한 '장항준'이라는 좀 특별한 인간에 대해 관심이 간다. 다음 편은...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