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인생은 '장항준'처럼 ㅡ

자존심을 덜어낼 때 비로소 가벼워지는 것들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904


ㅡ 인생은 '장항준'처럼 ㅡ

(자존심을 덜어낼 때 비로소 가벼워지는 것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흥행에 성공한 감독 장항준은 어느 TV프로에서 자신 인생관을 이렇게 말했다.


“선방했다.”


거창한 성공 서사도, 처절한 자기 계발 언어도 아니었다.


그저 “이 정도면 되었다”는 담백한 결론이었다


이 말이 내게 깊이 남았던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런 표현에 너무도 낯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더 높이 올라가라"라고 말한다.


초·중·고 학창 시절부터 일등주의 성적지상주의에 익숙해지고, 의사나 검사·판사 같은 직업, 억대 연봉, 수십만 팔로워 같은 숫자로 사람의 가치를 가늠한다.


그 과정에서 ‘중간’ 단계는 쉽게 지워지고, 과정은 생략된 채 결과만이 전부인 것처럼 남는다.


TV에서 처음 장항준을 봤을 때 나는 그가 개그맨인 줄 알았다.


너무 가볍게 촐랑대고, 아무 농담이나 스스럼없이 던지고,

스스로를 낮춘다.


나중에야 그가 영화감독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만들며 영화감독에 입문했지만, 그럼에도

TV에 나오는 그는 그 영화 주인공처럼 아주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그는 세계적 드라마 ‘킹덤’ 등 여러 유명한 드라마를 집필한 저명한 드라마 작가 '김은희' 남편이었다.


그는 아내가 본인보다 더 유명하고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인생은 무위도식이 최고다.”


장항준의 그 말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환경', 그리고 '선택'.


'환경'은 운에 가깝다. 하지만 체면을 세우지 않는 인생태도는 '선택'이다.


장항준은 후자를 택했다.


그의 오랜 친구는 가수 '윤종신'이다.


장항준의 20대 젊은 시절, 결혼은 했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장항준도 별다른 직업이 없었고, 현재는 유명작가인 김은희는 당시 전업주부로만 머무르고 있었을 때였다.


수입이 많던 쪽은 윤종신이었다.

윤종신은 장항준 부부 신혼생활에 생활필수품 등을 사다 주고, 술값도 자주 냈다. 장항준은 당시 "윤종신이 자기들을 거의 먹여 살렸다"라고 표현한다.


놀라운 점은 윤종신 기억에는 장항준부부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부 둘 다 너무 해맑았다" 회상한다.


장항준 또한 윤종신에게 신세 지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자기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버는 윤종신이 돈 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장항준이 돈이 급해 윤종신에게 3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윤종신이 한참 생각 후 말했다.


“그 나이에 돈 300만 원도 없냐?”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순간.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는 말.


그러나 장항준은 쿨하게 짧게 답했다.


“응, 없어.”


변명도, 과장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형편을 인정했다.


이 장면은 장항준인생을 설명하는 작은 축소판처럼 보인다.


없으면 없는 대로 말하는 태도.

그 태도는 자존심을 버리는 대신 좋은 관계를 지켰다.


장항준 어린 시절 회상장면도 꽤 흥미로웠다.


중학생이던 그는 엄마와 이모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그저 기쁘게 해주고 싶어 아무 맥락 없이 “엄마, 나 반장 됐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가 너무 기뻐 자기를 엎어 주었고, 다음 날은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학교를 찾았다. 장항준 담임선생에게 민망한 꼴을 당하고, 사실이 드러났지만 장항준 부모는 항준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그랬겠니.”


또 장항준이 성적이 오르지 않아 자신을 한탄하며 자기 방에서 울고 있을 때 항준아버지는 장항준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빠도 학창 시절 공부 못 했어. 그래도 지금은 잘 살고 있잖아.”


성취가 곧 존재의 가치가 되지 않는 집.


실패가 곧 수치가 되지 않는 가정 분위기.


그 토양 위에서 자라난 사람은 넘어져도

존재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장항준은 자신 삶을 '꿀팔자'라고 했다. 엄마가 보고 다녔던 점 집 여러 곳에서 자기 사주를 보고 그랬다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처럼 다가왔다.


아버지 사업이 망해 고등학교 때부터 집안이 힘들어졌지만 장항준은 크게 어려움을 못 느꼈다.


결혼초기 어려울 때도 '윤종신'이라는 귀인이 나타나 도움을 주어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장항준 부인 김은희가 드라마작가로 초대박을 터트린다.


한국사회에서 ‘아내가 더 유명하고 더 많이 번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편한 서열문제다.


남편체면, 가장위치, 비교시선 등 많은 남성들이 이 지점에서 과도하게 긴장한다.


그러나 장항준은 긴장은커녕

그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인생은 무위도식이 최고.”


이번에는 본인이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로 초초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중이다.


어찌 보면 진짜 꿀팔자가 틀림없다.


그러나 장항준 이런 꿀팔자 삶이 온전히 개인 힘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좋은 부모, 능력 있는 배우자, 좋은 친구 등등 사회적 관계 운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장항준이 도움을 받을 때 과도하게 움츠러들지 않는 태도,


성공 이후에도 허세로 자신을 부풀리지 않는 선택 등등


이러한 것들은 오직 장항준의 꿀팔자 운만이 아니라 '선방했다'는 반복된 마음으로 결정한 선택 결과다.


이처럼 우리는 왜 장항준의 “선방했다”는 말에 위로를 느껴야 할까?


지금 우리 사회는 ‘중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최고가 아니면 실패처럼 취급한다. 성공은 과장되고, 실패는 숨겨진다.


그래서 우린 늘 과잉긴장 상태로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항준은 이런 사회에 대놓고 말한다.


"이 정도면 됐다고"


크게 무너지지 않았으면,

관계를 잃지 않았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면,

그걸로 선방했다고.


이 말은 체념이 아니라 균형에 가깝다.


자신 크기를 인정하는 태도.


'지족상락'(知足常樂)의 태도.


<자기 분수를 알고 욕심내지 않으면 늘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어쩌면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

장항준이 초초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성적 이 아니다.


장항준이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아도 되는 선방했단 인생관.


비교 속에서도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태도.


자존심을 조금 덜어내면 관계는 덜 깨지고, 실패는 덜 치명적이며,

성공은 덜 부담스러워진다.


"선방한 인생은 크게 이긴 인생이 아니라 크게 망가지지 않은 인생이다."


장항준은 그것을 보여준다.

요란하지 않게,

가볍게 웃으면서.


그리고 그 웃음은 어쩌면 자존심 조금 내려놓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중한 가벼움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장항준처럼 사는 게...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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