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8

왕위다툼과 광종개혁 4 ㅡ고려광종과 조선태종의 '평행이론'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8

ㅡ 왕위다툼과 광종개혁 4 ㅡ

(고려광종과 조선태종의 '평행이론')


역사에는 종종 <평행이론>이라 불릴 만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평행이론'(Parallel Life)이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비슷한 상황 속에서 놀라울 만큼 닮은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로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 암살사건이 있다. 약 100년 시차 두고 반복된 역사적 비극은 많은 이들에게 "역사는 반복된다"는 인상을 남겼다. (아래 사진 참고)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평행선 위에 놓인 인물들이 적지 않다.


오늘은 고려 '광종'과 조선 '태종'

통해 그 평행선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1. 둘 다 건국군주 아들이었으나, 적장자는 아니었다


광종은 고려 태조왕건 아들이었고, 태종은 조선 태조이성계 아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적장자는 아니었다. 원칙대로라면 왕위와는 거리가 먼 위치였다. 물론 고려나 조선 건국초기라 '적장자 우선원칙'이 확립되어 있지는 않았다.


광종은 형인 '혜종'과 '정종'이 잇달아 단명하면서 즉위했다.


태종은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거치며 정치적 격랑 속에서 결국 왕위에 올랐다.


둘의 즉위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건국초기 불안정한 왕권 속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을 거쳐, 사실상 왕위를 빼앗다시피 하여 나라를 떠안았다는 점이다.


2. 왕권강화를 향한 집념


건국 직후 국가는 공신세력과 호족, 외척, 사병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왕권은 명목상 존재할 뿐 실제권력은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광종'은 이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956년, '노비안검법'을 실시해 호족의 사적기반을 약화시켰다.

958년에는 '과거제' 도입해 능력 중심 관료체제를 마련했다.

'관복제정'과 '외교강화'로 나라 위상을 높였다.


이러한 개혁은 단순한 제도 정비가 아니라, 왕권중심국가 체제확립을 의미했다.


조선 '태종' 역시 다르지 않았다.


'육조직계제'를 통해 재상권한을 축소하고 왕이 직접 정사를 통할했다. '사병혁파'하여 병권을 왕 아래로 집중시켰다.

'외척세력'을 철저히 견제했다.


두 사람 모두 ‘왕이 곧 국가’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고, 그 의지는 매우 강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려와 조선은 약 500년의 시간적 간극을 두고 성립한 국가로서, 국가구조와 정치이념, 그리고 관료층 성격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3. 피로 다져진 안정


고려 광종, 조선 태종 둘 다 왕권강화 과정은 결코 온건하지 않았다.


광종은 후반기에 들어 호족숙청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고려사'에는 당시 감옥이 항상 가득 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왕권안정이라는 목표 아래 많은 인물이 제거되었다.


태종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왕자의 난 과정에서 형제들이 희생되었고, 즉위 이후에는 처가인 민 씨 가문을 비롯해 외척 세력을 정리했다. 심지어 세종 장인 '심온'사건에서도 보이듯 외척이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과감히 제거했다.


두 인물 모두, 권력 앞에서 사적 관계를 우선하지 않았다.


그들 선택은 냉혹했고, 때로는 잔혹했다.


4. 대외정책과 국방강화


왕권강화는 내부통치에만 머물지 않았다.


광종은 중국 여러 왕조와 적극적으로 외교를 전개하며 고려의 국제적 지위를 높였다. 또한 북방 방비를 강화하며 국경안정에도 힘썼다.


태종은 즉위 후 명과 관계를 안정시키고, 외교적 승인 문제를 해결했다. 상왕이 된 이후에도 병권을 장악하며 '대마도정벌'을 주도했다. 훗날 '세종 4군 6진' 개척 역시 태종 대 국방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5. 갈라진 사후 운명


그러나 두 사람 평행선은 사후에 갈라진다.


태종 사후, 조선은 '세종'이라는 명군을 맞이한다. 태종이 피로 다져 놓은 중앙집권체제 위에서 문화와 과학, 제도가 찬란하게 꽃을 피운다.


반면 광종 이후 즉위한 '경종'은 개혁을 상당 부분 완화하며 이전 체제로 되돌리는 모습을 보인다. 광종 강력한 개혁은 즉각적 계승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출발선, 비슷한 통치방식, 그러나 다른 역사적 귀결이었다.


6. 평행이론이 주는 의미


광종과 태종은 닮아 있다.

건국군주 아들이었고, 적장자가 아니었으며, 불안정한 정국 속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강력한 개혁과 숙청을 통해 절대적 왕권을 구축했다.


이러한 평행이론 때문엔 "역사는 똑같지는 않지만 반복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역사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같은 선택도, 그 이후를 누가 이어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말을 낳는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한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배워서 잘못된 역사 전철을 밟지 않고 역사의 '오류수정 법칙'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의 강권과 개혁, 안정과 희생, 냉정히 바라보며 오늘 선택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성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광종과 태종의 평행선은 완벽히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닮은 궤적은 분명 우리에게 묻고 있다.


권력은 무엇으로 정당화되는가?


그리고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이어서 광종의 개혁 편이 계속됩니다.


― 초롱박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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