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794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794
— “은퇴 후,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게” —
나는 1960년생이다.
나와 갑장인 이 세대는 태어난 다음 해, 5·16 군사쿠데타를 맞으며 유년과 초·중·고 시절을 온전히 박정희시대 속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이라서였을까?
군사독재 압박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외우던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노래 경연대회, 그리고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 '유신체제'는 또렷하게 기억 속에 박혀 있다.
중학교 월요일 아침조회는 군대식 분열과 행진으로 시작했다. 당시는 배 굷는 애들도 많았다
그런 애들이 뜨거운 뙤약볕에서 영양실조로 픽픽 쓰러지는데도 교장선생님의 한 시간 가까운 훈화는 멈추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엔 까까머리에 교련복을 입고, 군대같은 학교 생활을 견뎌야 했다.
훈육을 빙자해 매를 든 선생님들 거친 폭력적 손길도 일상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일상이었기에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군사독재’라는 단어 무게를 군대가기 전 까지는 온전하게 느끼지 못했다.
돌아보면, 내가 태어난 해는 6·25 전쟁이 끝난 지 고작 10년이 지난 때였다. 역사 속 10년은 찰나와도 같다. 우리는 전쟁세대와 거의 동시대를 산 셈이다.
우리 세대를 가리켜 ‘베이비부머’ 라 부른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인류는, 본능처럼 다시 아이를 낳았다.
유럽과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우리나라는 6.25이후 1955년부터 1963년 까지가 그 시기다. 출산장려 정책 이 맞물리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쟁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월남전, 중동전쟁 같은 국지전이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80여 년 동안 인류는 다시 세계대전급 참화를 겪지 않았다.
특히 오천 년 역사 내내 크고 작은 전쟁을 숱하게 겪은 우리나라에서 내 한 평생 동안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는 건 그야말로 ‘행운’ 이다.
그 행운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성장동력이 되었고, 산업화와 경제부흥을 이끌었다.
아마 먼 훗날 역사가들은 우리 세대를 “고난과 발전이 동시에 꽃핀 세대”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행복한 세대 였을까?
우리는 가정을 위해, 생계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달렸다.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며 ‘샌드위치 세대’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다.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은 없었다.
그 사이 자식들은 하나 둘 곁을 떠났다. 몸은 여기저기서 고장 신호를 보내고, 노후준비는 턱 없이 부족하다.
환갑을 넘긴 지금, 가끔은 과거가 아련하게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 지기도 한다.
형제가 다섯 이상이던 우리 부모 세대도 노년에는 외로워보였는데, 자녀가 둘 이하가 대부분인 우리 세대 노후는 얼마나 더 외로울까?
세월은 빠르게 흘러 경조사 소식 만 자주 들려온다. 경조사비보다 더 무거운 건, 빠르게 멀어져 가는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자주 떠오른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조언이 넘치지만, 오늘 눈에 들어온 건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선생 말이었다.
“회사 다닐 때는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잖아요.
해야 할 일이 먼저고, 하고 싶은 건 늘 뒤로 밀리죠. 하지만 은퇴 후에는 그동안 묵살했던 열망을 꺼내야 합니다. 그건 홀로 있을 때만 깨달을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어진 말.
“우리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왔어요. 은퇴 후 인간관계가
줄어 드는 걸 마치 패배처럼 느끼죠. 하지만 오히려 인간관계를 간소히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직장 동료, 동창과도 너무 자주 만나지 말아야 해요.”
이 말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노후에 최적화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을, 나는 꽤 잘 견디고 즐기니까...^ ^
— 초롱박철홍 —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게” 선배의 조언 — 중앙일보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2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