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의 시작, 그 이전을 걷다
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1
ㅡ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 그 이전을 걷다 ㅡ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라는 말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이 단어를 수도 없이 사용한다. 아마 여러분도 자연스럽게 쓰고, 접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우리나라’ 는 과연 어느 나라를 가리킬까?
대부분 사람들은 단군조선에서 시작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날 대한민국>에 이르는 흐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조선 이전, 이 땅 한반도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단군 이전에도 한반도에는 사람들 살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우리 조상 ‘호모사피엔스’ 이전, ‘호모에렉투스’가 이 한반도 땅을 수 십 만년을 거닐었다는 증거도 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나라’ 역사는 단군조선으로 시작되지만, 인류가 한반도 땅에서 살아온 시간은 상상이상 훨씬 더 길다.
그렇다면 우리 한민족의 최초 조상은 누구일까?
인류학 관점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직접적인 조상이다. 그러나 민족학 관점에서는 조금 더 좁혀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상고시대 한반도에도 인류가 살았다는 사실을 넘어, 우리 한민족 뿌리와 연결되는 역사적 궤적을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인류의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 약 700만 년 전,
초기인류가 아프리카 대지를 거닐었고, 약 200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로 퍼져 나갔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 그리고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존과 적응의 긴 드라마였다.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난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홍해와 지중해를 따라 북아프리카에서 유럽 남부로 이동한 길. 비교적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사냥감을 제공했지만, 산과 강을 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후에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했다.
보다 중요한 길은 아시아 대륙 으로 이어지는 동쪽 경로다. 아프리카 북동쪽,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소말리아 지역에서 출발한 인류는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중동으로 진입했고, 점차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들어왔다. 사막과 산맥, 강을 넘어야 했고, 기후 변화에 적응 하며 이동했다.
인류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약 70만 년 전으로 추정 된다.
당시 한반도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며 지형과 기후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오늘날의 황해와 남중국해 일부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걸어서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었다.
호모에렉투스가 먼저 이 땅을 밟았지만, 약 10만 년 전을 전후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복합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으며, 호모사피엔스와 중첩시기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약 1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하며 인류의 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호모사피엔스는 혹독한 기후에 적응하며 생존전략을 발전시켰고, 더 정교한 도구와 불 사용, 체계적 사냥전략을 갖추었다.
호모사피엔스는 빙하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가와 계곡에 정착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반도 <연천 전곡리, 평양 역포, 제천 점말 동굴>에서 발견되는 유물이 바로 그 흔적이다.
한반도는 단순히 인류가 도달한 ‘말단지역’이 아니라, 동아프리카 에서 시작된 인류이동 종착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오늘 우리가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땅 위에는, 이미 수십만 년 전부터 인류가 적응하며 살아온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길을 따라가 보면, 역사란 단순히 문자를 가진 기록만이 아니라, 생존과 이동, 환경과 적응 긴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식량을 찾아 헤매며 이동했고, 기후와 환경에 따라 터전을 바꿨다.
호모사피엔스 역시 한반도에 자리 잡고서도 한반도 척박한 땅과 혹독한 기후변화에 따라 몇 차례 북으로 갔다 남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인류는 약 1만 년 전 신석기시대 접어들면서, 정착생활과 농경을 시작했다.
더 이상 끊임없이 이동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바위와 흙을 다듬어 집을 짓고, 토기와 그릇을 만들어 음식을 저장했다.
<부여 송국리, 강원 강릉 안인리, 경기 여주 흔암리> 등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간석기, 그물과 돌도끼는 단순한 생존도구를 넘어 문화적 성취를 보여준다.
신석기시대 시작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간 사회구조와 삶 방식을 바꾸는 계기였다.
농사지으면서 식량을 축적했고, 마을이루며 집단 간 교류와 분업 가능해졌다. 이렇게 형성된 정착생활과 농경문화는 훗날 '고조선'과 '삼국시대' 문명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다.
결국 우리가 흔히 ‘우리나라 역사’라고 말할 때, 그 시작은 '단군조선'이지만, 그 뿌리는 구석기와 신석기 거쳐 수십만 년 동안 이어진 인류 삶과 문명 궤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 위 에는, 오랜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 들이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온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어서 단군신화이야기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첫 번째 사진 구석기시대 동굴생활
두 번째 사진 구석기시대 유물 발견지
세 번째 사진 신석기시대 암사동 선사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