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이기적 인물과 이기적 유전자의 진화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39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39


ㅡ 역사 속 이기적 인물과 이기적 유전자의 진화 ㅡ


미국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 생물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이 쓴 책 제목이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원제: The Goodness Paradox)이다.


인간이 가장 악한 종이면서 동시에 가장 선한 종이기도 한 이중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한국어판에는 <인간본성의 역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직접 읽어 보진 않았다. 다만 경향신문의 책 소개 서평만 읽었는데, 그 서평만 봐도 내가 오래 전부터 궁금해 하던 매우 심오한 주제가 담겨 있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 본성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루소주의자'들은 “인간은 원래 평화로운 존재였으나 사회가 그를 타락시켰다”고 보았다.


반대로 '홉스주의자'들은 “인간은 본래 폭력적이었으나 사회가 그를 문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 을 내세웠다.]


나 또한 오래 전부터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해 궁금했다.


특히 내가 오래 전 정리해 봤던,

<역사 속 이기적 인물과 이기적 유전자의 진화>라는 글에서도 같은 고민을 드러낸 적이 있다.


오늘은 그 글을 토대로 다시 정리 했다.


인간 유전자에는 ‘선’이나 ‘악’이란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금 우리가 '올바른 삶'이라고 느끼는 그런 삶 속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나는 SNS 등에 역사와 인문에 관한 글을 꾸준히 써왔다.


그러다 보니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와 실제 역사는 많이 달랐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조선지도층이었던 대부분 '조선사대부'들 행태는 기가막힐 지경이었다.


그들 이기적 행위는 백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나라는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결국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나는 그런 조선 역사가 너무나 한탄스러웠고, 조선을 말아먹은 이기적 인물들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는 지나치게 탐욕스럽고 이기적 인물 군상들이 반복적으로 계속 등장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점잖고 품격있어 보였고, 뛰어난 재능과 체세술로 주위사람들 호감을 샀다.


그러나 그 속내는 지독한 이기주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국가나 민족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과 가문 영달만 추구했다. 다만 나라가 큰 위기나 갈등에 처하지 않는 한, 그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에 역사 속에 ‘꽤 괜찮은 인물’로 남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이완용'을 들 수 있다.


만약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이완용은 우리 역사 속에 전혀 다른 얼굴로 기억 되고있을지 모른다.


그는 나라와 민족을 일제에 팔아 먹은 <민족반역매국노> 아니라, <근대적 학교 제도 창도자이자 교육 개혁가, 대한민국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며 지금도 존경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1890년대, 조선은 구습의 서당과 향교를 넘어 새로운시대 교육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때 학부대신을 지낸 이완용은 신식교육 제도 도입에 힘을 쏟았다.


이완용은 '소학교령'(1895)을 반포해 오늘날 초등학교 제도의 뿌리를 심었고, '한성사범학교'를 정비해 교사 양성체계를 마련 했다. 또한 <관립 한성중학교와 외국어학교, 의학교, 법관양성소> 세우며, 중등·고등교육, 전문교육 문을 열었다.


오늘 시선으로 본다면, 이는 분명 <대한민국 교육 출발점> 이라 불릴 만하다.


역사의 가정은 덧없지만, 이완용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이런 아이러니는 인간 본질 이중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필요하게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완용과 같은 속성을 가진 인물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렇지 않은 인물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 현실 속에서는 더 많이 보고 있다. 내 주위에서도 수도 없이 본다. 어쩜 내 자신 속에도 그런 본성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역사 속에서도 마찬 가지였다.


아마도 인간의 이런한 습성들은 유전자가 남겨 논 ‘인간본성’ 일 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학창시절, 인간본성에 대해 '성선설'과 '성악설'로 나누어 배웠다.


나는 그 당시 '성선설'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성악설' 쪽에 가깝다. 다만 그 이유는 단순히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관점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진화의 주체는 인간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유전자는 '선악 개념'을 초월해 있다.


‘선’과 ‘악’은 인간이 만든 규범일 뿐이다. 유전자의 가장 강력한 본능은 <생존과 번식>이다.


그것을 위해 유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몸은 바로 그 '이기적 유전자'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이를 인간적 언어로 번역 해본다면, 인간본성은 '성악설'에 훨씬 더 가깝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인류의 진화란, 우리 몸 속에 가득한 생존·번식 본능의 '이기적 유전자'와 싸워 온 역사이다."


인류는 '이기적 유전자' 본능에 맞서 진화하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해 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나, 아직도 '이기적 유전자'가 많이 남아있는 '이기적 인간'들이 거의 대부분 승리했거나 하고있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와 인간 진화의 싸움>은 아직 초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여전히 '이기적 유전자'에 지배 당하고 있지만 당당히 맞서 가고 있다.


<석가·공자·소크라테스·예수>와 같은 ‘돌연변이적 존재’가 나타나 인류를 한 단계씩 진화시켜 왔다.


그들은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 본능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 을 보여 주었다.


과연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를 완전 제압할 날이 올 수 있을까?


만약 그날이 온다면, 바로 그 순간이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 세상 시작일지도 모른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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