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돌아갈래!"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38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38


ㅡ "나 다시 돌아갈래!"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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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자서전'이라고 까지 부를수는 없지만, 내 지난 날들을 영화처럼 압축해 스쳐가듯 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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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세월이 흘러도 스크린 위에 남은 장면들은 내 삶의 어떤 순간보다 선명하다.


그중에서도 <박하사탕>이라는

20여년 전, 마흔 초반의 내가 보았던 그 영화는 아직도

내 심장을 쥐어 흔든다.


기차가 거꾸로 달리고,

기억이 역순으로 흘러가며,

주인공 '영호' 인생이 하나둘 벗겨지는 순간들.

첫사랑의 미소에서,

시대 폭력에 짓밟힌 청춘으로,

그리고 끝내 죽음을 향해

서 있는 중년의 남자.


영호가 기차와 마주 서서 외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 절규는 영화의 장면을 넘어,

당시 내 가슴속에서 뜨겁게

울려 퍼졌다.


마치 나의 목소리를 빌려

영호가 외쳐 준 것처럼.


내 지나온 날들을 돌아 본다.


담양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은

늘 흙먼지로 가득했다.

저녁노을이 번지는 대숲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공부도, 운동도 특별하지 못한, 눈에 띄지 않는 아이.


중·고등학교 시절은

그 평범함마저 억눌러버렸다.

숨 막히는 규율과 억압 속에서 교실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조차 감옥의 빛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세월이었다.

그런데 내 아들들 중고학교생활을 지켜보니, 돌이켜보면 내 시절이 더 ‘양반’이었다 싶었다.


아마 그 억눌림 때문이었으리라.

대학에서 맞이한 자유는 내게 눈부신 폭발처럼 다가왔다.

좁은골방에서 술병이 굴러다니고, 밤새 통기타 소리가 이어졌다.

노래 속에서, 웃음 속에서,

내 청춘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첫사랑의 눈빛, 그녀 미소 하나가 세상을 다 가진 듯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바로 그 시절, 지금 내 인성이 완성되어 갔다.


그러나 청춘의 낭만은 오래 가지 못했다.


10·26, 12·12, 5·18...

격동의 현대사가 내 삶을 거칠게 흔들며 눈앞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내 청춘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의대를 지원했다 2지망으로 된 공대생, 내 길이 아니였다.


난 군대로 몸을 피신하듯

들어 갔고,

세상 고단한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내 적성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공대생 3학년으로 복학했다가 결국 학력고사를 다시 치르며

학교와 학과를 바꾸는

큰 모험을 했다.


공대생이 늙은 만학의 인문학도가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내가 꿈꾸던 일을 지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방송국 기자나 PD, 꿈꾸었다.


인문학 만학도는 할 거라고는

고시준비 밖에 없었다.


밤마다 고시원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은

내 젊음을 잠식하는

시계바늘 같았다.


시험지 위에 남겨진

수많은 X표는

내 청춘에 찍힌 낙인처럼 오래도록 남았다.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들 웃음을 품으며 살아왔지만

언젠가부터 ‘꿈꾸던 나’는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되었고,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들던 해,

바로 그 해에 삶의 변곡점이 내게도 불현듯 찾아왔다.


담양의 여름밤은 선거열기로 달아올랐다.

거리마다 나부끼는 현수막,

마이크 스피커에서 쏟아지던

유세 목소리,

아침이슬에 젖은 운동화.


나는 형님처럼 모셔온 분 곁에서

숨을 몰아쉬며 구호를 외쳤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희망과 절망이 뒤엉켜,

매 순간이 생사 갈림길 같았다.


내 선거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날 들이었다.


마침내 새벽, 투표함이 다 열렸고

“당선!”이라는 두 글자가 울려 퍼지던 순간,

내 가슴은 뜨겁게 용솟음 쳤다.


담양군청 군수비서실장으로 발탁되던 날,


내 인생의 또 다른 막이 올랐다.


그리고 작은 지역 정치인이 되어 갔다.


이제 그 날들로부터 스무 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내 삶은 '박하사탕 영호'보다 순탄했을지 모르지만,

나 역시 굴곡과 상처를 껴안고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영호의 절규를 기억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가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니였을 것이다.


아마도,

순임이를 바라보던

그 떨리던 순간,

세상에 맞서며 꿈꾸던

청춘의 불꽃.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게 아니였을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돌아가고 싶은 것은

날짜와 나이가 아니라,

'꿈꾸던 나' 자신이 살아 있었던

그 순간이다.


강물은 거슬러 오를 수 없지만,

당시 꿈꾸던 마음들은

오늘도 되살아 날 수 있다.


그 순간, 과거의 빛은

다시 현재를 비춘다.


그래서 나는,

지치고 버거운 날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끔 속삭인다.


“나, 다시 돌아갈래!”


ㅡ 초롱박철홍 ㅡ


내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1학년 시절 깨벙재이 친구들과 담양 추월산 등반하던 때.


만약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어렸을 적 내 사진에서

다 나를 찾아내 맞춘다면

엄청난(?) 상품을 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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