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와 '조선상고사'
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11
― 잊혀진 왕국들 5 ―
(신채호와 '조선상고사')
며칠 전, 내가 올린 고조선 관련 글에 한 독자가 댓글을 남겼다.
“고조선 시대를 논하면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이야기가 없네요. 혹시 '조선상고사'를 위서로 보시는 건가요?”
나는 순간 뜨끔했다. 솔직히 말하면, 신채호 선생(이하 신채호) '조선상고사' 를 깊이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 관련 글을 연재하면서도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 댓글 덕분에 이번 기회에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 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상고사'는 위서가 아니다. 그러나 나 역시 왜곡된 역사교육 받아온 세대라 그런지, 신채호 주장을 있는 그대로 다 수용 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신채호는 초기에는 영웅주의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지만, 러시아혁명 이후 '민중사관'을 받아들이며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으로 사상 지평을 넓혀갔다.
이 때문에 훗날 극우 세력으로부터는 ‘공산주의자’라는 매도도 당한다.
그러나 신채호는 어디까지나 ‘역사를 통해 민족의 길을 찾으려 한 지식인’이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껏 알고있었던 신채호는 ‘일천년래대사건’이라 칭한 '묘청의 난'과, 김부식 '삼국사기' 비판한 부분이었다.
나는 학창시절 배웠던 신채호 '묘청론'을 오랫동안 감동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런 영향으로 김부식을 단순히 ‘사대주의자’로 비판한 기고문을 일간지에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고대사도 흐른다’ 연재에서야 비로소 제 편협한 역사인식을 돌아보고, 김부식과 '삼국사기'를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
김부식과 묘청에 관해서는 '고려 편'에 자세히 정리하였고 삼국사기 이 부분은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그렇다고 신채호 민중적 역사관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신채호는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충분히 주장할 만한 역사관을 제시한 것뿐이다.
다만 오늘의 눈으로 보자면, 신채호 시각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와 투쟁·저항 담론에 기울어져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신채호는 우리 상고사나 고대사를
[묘청이 유교학자 김부식에게 패한 뒤, 우리나라 역사서술은 중국을 높이고 우리를 낮추는 유교적 사관에 지배되었다.
내란과 외적의 침입 때문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한 자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
그래서 그는 현존하는 모든 사료를 검토·대조하여, 지난 천 년 동안 축소·왜곡된 고대사를 바로 잡고자 했다. 특히 단군시대를 비중 있게 다루고, 고구려를 ‘대중국 투쟁’의 선봉으로 높이 평가한 것은 그러한 문제의식 반영이었다.]
신채호 '조선상고사'는 <단군에서 백제부흥 운동>까지를 다루며, 1931년 뤼순 감옥에서 집필을 시작해 1936년 순국할 때까지 이어 졌다. 사후 12년이 지난 1948년에야 출간된 이 책은 총 1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은 이렇다.
제1편 총론
제2편 수두시대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
제4편 열국 쟁웅시대
제5편 고구려 전성기와 쇠퇴기
제6편 고구려·백제 충돌
제7편 남방제국 대 고구려동맹
제8편 삼국 혈전
제9편 고구려와 수 전쟁
제10편 고구려와 당 전쟁
제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여기서 신채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으로 파악했다.
이는 '헤겔식 변증법'의 영향을 받은 관점으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모순과 갈등에서 찾았다.
신채호는 역사서술 원칙으로 ‘시간적 상속성’과 ‘공간적 보편성’ 을 강조했는데, 이는 어떤 역사적 법칙이나 원리가 특정한 시공간을 넘어 지속적·보편적으로 적용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신채호는 기존의 <단군–기자–위만–삼국>이나 <단군–기자–삼한–삼국> 계승 체계를 거부했다.
대신, 실학자 이종휘 '동사'에 영향 받아서 아래처럼 주장했다.
<대단군조선–고조선–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계보를 세웠던 것이다.
신채호는 '부여'를 민족사 핵심 으로 보았고, '고구려'와 '백제'를 부여족 후손으로 규정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반대로 신라는 민족적 정통성이 없으며, 중국에 의존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축소 통일’의 주체로 낮춰 보았다.
심지어 김유신 업적을 ‘음모론’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했다. 대신 백제부흥운동을 크게 다루며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시각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민족 자긍심 고취하려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원 간섭기' 때 승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신화'를 실어 민족의 뿌리를 붙잡으려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신채호 한계도 뚜렷하다.
신채호는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강조했지만, 옥중 집필이라는 한계 탓에 많은 부분이 기억과 추정에 의존했다.
고구려가 만주를 넘어 중국 본토를 지배했다 거나, 백제가 일본까지 식민지로 삼았다는 주장은 아직까지는 과장된 해석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환단고기'와 연결 될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상고사' 는 한국 근대 역사학 기념비적 저작임이 분명하다.
사대주의적 역사관과 식민사관에 맞서, 민족 뿌리를 찾고 상고사나 고대사 진실을 복원 하려 한 시도 였기 때문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기록이다.”
'조선상고사'는 단순한 고대사 서술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고난 시기를 살아내며, 자기 정체성을 붙잡으려 몸부림친 기록이었다.
오늘 우리가 그것을 비판적으로 읽더라도,
신채호 정신과 문제의식 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는 유산이라 생각해야 한다.
이어서 '삼국사기와 상고사' 편이 계속됩니다.
― 초롱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