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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May 22. 2020

마음에 깜빡이를 켜자

마음에 깜빡이를 켜자

우리가 신호등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곧 바뀔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신호등처럼> 중에서     


가족에게도 마음에 방향을 알려주는 깜빡이가 필요하다.

거북이가 되었다. 도로 위 정체는 풀리지 않고 엉금엉금 가다 서기를 30분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은 긴 차량 행렬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어림짐작이지만 출퇴근 시간이 아닌 이상 차량 접촉사고가 아닐까 생각됐다. “멈추지 않으면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공자> 했던가. 느릿느릿 거북이 주행으로 문제의 구간에 다다랐다. 아니나 다를까 접촉 사고였다.  

   

뒷목을 부여잡은 채 온갖 험상궂은 얼굴을 한 운전자가 얼굴을 찌를 듯 삿대질을 해댔다, 찌그러진 승용차와 여기저기 널린 파편 흔적이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사고 구간을 지날 찰나.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면 어떻게 해요.”

끼어들기를 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문제는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끔은 꼬리물기 행렬에 허리를 파고드는 얌체가 된다. 대부분은 약속시간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끼어들려는 사람과 끼어드는 걸 막으려는 운전자들의 기싸움도 생긴다. 얼마나 바쁘면 그랬을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순간. 황당한 시추에이션이 발생한다. 기다림이 무색하게 앞차의 깜빡이가 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선 미안한 마음에 비상 깜빡이를 켜고 양해를 구할 터인데. 염치를 잃어버린 깜빡이 하나가 마음에 평정심을 잃게 만든다.  

   

요즘 아내의 마음 깜빡이가 켜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과 육아가 지속되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 순간 아내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먹먹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나누어야 하나. 시간은 흐르고 그저 애꿎은 휴대전화만 매만지며 불편한 마음을 달랬다.  

  

입술이 근질근질 입을 닫을 수 없는 날.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색시야 요즘 많이 힘들지.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아이들 데리고 바람 좀 쐬고 올까?

요즘 많이 바쁘잖아 괜찮겠어.

그럼 괜찮지. 아이들도 집안에만 있으면 답답하니까 바람 쐬면 좋지.

          

때로는 이성적 사고의 틀을 벗어던지는 삶에 방식이 유용할 때도 있다. 오후 2시 속초 바닷가로 향했다. 휴게소에서 사 온 구운 오징어와 감자, 호두과자가 더해지자 여행의 즐거움도 더했다. 늦은 오후 속초 해변에 도착하자 파란 하늘에 흰 구름과 석양의 붉은 태양이 우리를 반겼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닷물과 한 몸이 되었다. 짧은 시간 따뜻한 모래 알갱이 위 가족의 흔적도 새겼다.     

젖은 몸을 말리는 해물칼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이미 자정이 지났다. 이렇게 가족의 짧은 여행길은 추억을 남겼다.     


며칠 뒤, 저녁 무렵 아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던 찰나.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다녀온 속초해변 좋더라. 요즘 왠지 바다가 보고 싶었거든. 다음에 시간 되면 다시 가도 좋을 거 같아.

그래 같이 가자.     


아내의 마음을 몰랐다. 바다가 보고 싶고, 가고 싶었다는 것을.

도로 위에서는 내 마음과 상황에 따라 좌측 깜빡이가 켜지기도 하고 우측 깜빡이가 켜지기도 한다. 때로는 다급함과 미안함을 전하는 비상 깜빡이를 켜며, 서로에 생각과 마음을 이해한다.     

가족에게도 마음에 방향을 알려주는 깜빡이를 켜자. 그래야 안다. 내 마음을. 그리고 가족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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