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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May 23. 2020

굿나잇 키스

굿나잇 키스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는 구절이 동해로 가는 내내 마음속을 맴돌았다. 1년 365일, 내게는 가족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가족의 행복을 꿈꾸며 밤낮없이 일했다. 일의 흐름이 끊길까 봐 가족을 돌아볼 틈도 없이 오늘이 아닌 내일에 행복을 다짐했다. 살며시 아내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색 알갱이로 버무려진 볶음밥을 입안에 가득 채우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에 모습. 어느새 10살, 7살로 성장한 아이들은 내게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5월의 화창한 봄날, 가족의 삶 속에 내가 없었다.     


모두가 잠든 일요일 새벽 4시, 고요한 아침을 가르는 기상 알람이 울린다. 강원도 동해에 가기 위해 첫 전철에 몸을 실었다.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버스를 타자 그제야 안도에 한숨을 내쉰다. 10년 가까이 개인 사업을 하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일정관리다. 언뜻 보면 사업자 대표가 원하는 시간과 일정에 따라 수월하게 일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월급을 받으며 일하지 않는 만큼, 달력에 공휴일은 내게 진정한 빨간 날이 될 수 없다. 마음속으로 인정될만한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1년 365일은 나에게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의 일상과 다름없다.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가 힘겨운 아침. 달리는 버스에서 바라본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쇠한 마음을 달랬지만 가족과 함께 못하는 헛헛한 마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장시간 이동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펼쳤다.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 한 구절. 딸은 병을 얻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책을 쓰고 읽기 위해 가족을 챙기지 못하고 분주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는 지난날을 자책했다. 글의 호흡이 끊길까 봐 딸을 돌아볼 틈이 없었던 아버지.     

책을 덮고 달리는 버스의 행선지를 돌릴 수 없을까. 오늘에 나를 마주하듯 마음 깊숙이 고통이 파고들었다.  

    

지금부터라도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아 가자.

오늘 밤에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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