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있어 좋은 날

동생이 있어 좋은 날

by 최정환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무엇에 홀렸던 걸까. 다섯 살 아이는 불빛을 찾아 헤매는 불나방이라도 된 양 정신없이 엄마를 따라갔다. 모처럼 이모가 집을 찾은 날.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간 엄마는 등 뒤 아들의 인기척을 모른 채 걸음을 재촉했다. 끼이익 쾅. 고요했던 가로수길의 평온함이 사라지는 소리가 울리고. 길가 던 걸음을 멈췄던 아버지는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놀란 가슴을 움켜쥐며 정류장으로 내달렸다.


철길을 넘어 정류장에 다다르자, 사고를 낸 택시 뒷 자석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찌 된 일일까. 작은 아이에 머리 위로 솟구치는 피를 감싸기에는 모자랐던지 마른 수건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여졌다. 아이를 태운 택시는 그렇게 눈앞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천운이었을까. 아이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러나 삶의 기쁨도 잠시. 사고의 흔적은 오랫동안 가족을 힘들게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머리가 아파 울부짖는 아이. 사그라지지 않는 고통은 하염없는 눈물이 되어 가족의 아픔을 채웠다.


그 아이는 내 동생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을 거슬러 올라 동생이 세 살 때였을까.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네 사람 여럿이 모여 담소를 나눴다. 얼마나 재밌었던지. 엄마는 잠시 어린 아들의 존재를 잊었나 보다. 마당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며 눈에 보이는 이것저것을 입안에 욱여넣던 그때. 이야기를 나누던 아주머니는 무엇에 놀랐던지 소스라치며 어머나 어머나를 외쳤다. 건너편 문지방 아래에 놓아둔 그것. 동생은 쥐약 알갱이를 만지작대며 입으로 우물우물거렸던 거다. 깜짝 놀란 엄마가 휘둥그레진 두 눈을 부릅뜨고 부리나케 뛰어가 아이를 쳐들었다. 마당 한가운데 펌프 물을 길어 정신없이 약을 걷어내고 혀를 닦아냈던 그때의 기억.

혹여나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동생과의 또 다른 기억은 아버지의 외상 심부름이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슈퍼 아주머니 앞에 서서 외상이요 라는 말을 꺼내는 게 왜 그리도 싫었던지.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지가 나를 찾았다.

얘야. 태양슈퍼 가서 막걸리 한 병 하고, 담배 좀 사와라.

돈은요. 그냥 외상이라고 말하면 알게다. 예

그날도 외상 심부름이 싫었던 터. 멍하니 넋을 놓은 동생 손을 잡고는 슈퍼로 행했다.

들어가서 아주머니께 우리 아빠가 외상으로 막걸리 한 병이랑, 담배 한 갑 달라고 했어요.

말해 알았지.

알았어. 형.


입구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살피고는 먼발치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이윽고 동생이 검은색 비닐봉지를 움켜쥔 채 뒤뚱뒤뚱 걸어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됐다 싶을 무렵.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형 외상 했어. 형 어딨어. 형. 소리를 들었는지 슈퍼 아주머니가 문 밖에 나와 내 쪽을 살피고는 아무 말 없이 들어갔다. 창피했던 외상의 기억은 오랜 시간 나를 고달프게 했다.

그 나이 형제들이 다 그랬을까나.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던 날. 동네 또래 녀석들과 마실을 가려던 참이었다. 형을 쫓아가겠다며 울고불고 울어대던 동생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됐다. 그때는 왜 그랬던지. 조금만 놀고 올 테니 집에 가있어. 너는 어려서 못 가니까 어서 빨리. 급기야 말을 듣지 않는 동생에게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마구 내던졌다. 그렇게 몇 번이나 돌팔매질을 해댔을까. 형에 대한 미움과 야속함을 마음에 새긴 동생은 울음을 그치지 않은 채 유유히 사라졌다.


30년 세월이 흐르고 40대의 형제는 여전히 가족으로 살아간다.

코흘리개의 얼굴에는 어느덧 가칠한 수염과 굵은 주름으로 세월의 흔적을 담았다.

어린 시절 두 번이나 생사에 갈림길에 마주했던 동생도 기억하고 있을까.

추억과 함께 살아온 가족. 오늘도 동생이 있어 좋은 날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