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보는 100℃ 가족 온도계
우리 집에는 마음을 돌보는 가족 온도계가 있다. 밤 10시. 얘들아 오늘은 몇℃에요. 옷장 문 쪽을 힐끔 쳐다본 아이들은 머뭇거림 없이 90℃를 외친다.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줄넘기도 하고, 미끄럼틀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어요. 태권도를 열심히 했더니 관장님께 칭찬도 받았어요. 밥도 잘 먹고, 스마트폰 약속도 잘 지키고.
좋은 일이 많았네. 그럼 나머지 10℃는 뭐였을까.
친구랑 조금 더 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거든요. 저녁에는 동신아파트 할머니 집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몸이 아프셔서 가지 못했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오늘 마음 온도가 90℃ 라 아빠도 기분이 좋네.
잠시 형의 이야기를 듣던 둘째도 한몫을 더한다. 저도 90℃에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놀이도 하고, 햄버거도 먹었거든요. 나머지 10℃는 저녁에 시간이 늦어서 스마트폰을 못 본 게 아쉬웠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가족은 이렇게 모여 마음을 나눈다.
일상에서 가족의 소통이 쉽지 않은 이유는. 각자 살아온 삶에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지붕 아래 살을 붙이고 정을 나누며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자란 탓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과 삶에 궤적도 달랐다.
부모라는 이유로 소통의 일방통행이 반복되던 날.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주체가 아닌 보호자의 의지와 선택에 껴 맞춘 삶을 살아가게 됐다.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학교와 학원에 가야 하며, 집에서 조차 부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톱니바퀴의 삶.
뒤늦게 깨달은 것은 아이들은 하나의 인격이자 삶에 주체로서 스스로의 의지와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의 일방통행.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고, 그것이 모름에 문제였음을 또다시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마음에 쌓아둔 분노의 에너지를 분출했다. 불만과 오기의 흔적들. 가족에겐 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화에 방법을 몰랐고, 부모로 살아가는 방법도 몰랐다.
무작정 가족사진과 온도계를 그려 넣고 안방 옷장에 덜렁 붙였다. 가족 온도계였다.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앉혀 놓고는 사용법을 설명했다.
매일 잠자기 전에 하루 있었던 일을 마음 온도로 표시해 보는 거야.
0℃에서 100℃까지, 0℃는 기분 꿀꿀꿀, 50℃는 기분 좋아요, 100℃는 아주 좋아요.
가족은 매일 밤 그날에 기쁨과 아쉬움, 감사함과 고마움을 돌아보며 마음 온도를 나눴다. 온도가 몇 도였는지, 방법이 정확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온전한 삶에 주인공인 가족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 서로의 눈을 맞추며, 삶을 응원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아이에 눈은 잔잔한 호수가 되었다. 그 안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리고, 물결의 출렁임은 가족의 마음속으로 깊숙이 퍼져나간다.
우리 가족의 마음 온도는 100℃ 여전히 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