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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May 16. 2020

포노 사피엔스 씩씩이와 행복이

포노 사피엔스 씩씩이와 행복이

지구별을 찾은 포노 사피엔스 씩씩이, 행복이와는 10년째 동거 중이다.

씩씩이와 행복이는 아이들에 태명이다. 첫째 민준이는 씩씩이, 둘째 현준이는 행복이. 2011년 이후 지구별에 온 둘은 온갖 스마트기기(TV, 컴퓨터, 스마트폰)와 혼연일체가 된 포노 사피엔스 인류다. 스마트기기를 다루는 손놀림은 마치 새로운 인종에게만 부여된 뇌 기능인 것처럼 신기에 가깝다. 스마트기기와 잠시 떨어지기라도 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헤어질 수 없다고 애걸복걸.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헤어짐의 시간이 흐른다. 슬픔은 잠시 이내 아이들 몸속에선 또 다른 DNA 가 꿈틀 된다. 광고 속 에너자이저 건전지가 몸 안에 장착되고, 고무공의 탄성 유전자가 결합되면, 잠시 후 통통통통 온 사방에 미친 듯 튕겨대는 고무공 인간이 환생한다. 마법에 가루라도 부려댄 듯 지켜보던 이에 넋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다섯 살짜리 아이의 가슴은 두 개의 구멍을 가진 활화산이라 했던가. 하나는 파괴적인 분출구요, 다른 하나는 창조적인 분출구라고. <와너> 지구별 우리 집은 포노 사피엔스 신인류의 끊임없는 파괴와 창조적 분출로 조용할 날이 없다.

          

포노 사피엔스 신인류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야외 활동이다. 신인류는 가끔씩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산소탱크 박지성으로 빙의가 된다. 뛰고 뛰어도 지치지 않는. 하지만 뛰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탁 트인 자연공원을 찾아 마음껏 뛰어놀게 빗장을 풀면 풀숲 메뚜기가 되어 사방팔방 발자국을 수놓아 가득 채운다.

            

가족이 모인 휴일은 신인류의 꿈틀거림이 최고조에 이른다. 잠에서 깨어 이불을 사정없이 걷어차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면, 기지개를 쫙 켜고 커다란 눈을 끔뻑대는 신인류의 하루 호흡이 시작된다. 이럴 땐 모두의 평화를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게 상책이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동네 인근 정릉 하천을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면 따스한 햇살 아래 초록빛 식물과 싱그러운 바람, 맑은 샘물을 마주한다. 아이들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레이싱을 즐긴다.

          

킥보드와 혼연일체가 되어 내달리는 아이들은 씽씽 바람을 가르는 날쌘 제비 같다. 막내아들 김뽀송군의 목줄을 칭칭 휘어 감고 서로를 의지한 채 뒤쫓기를 벌써 20분째. 한 발, 한 발 뛸 때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둔 새우깡과 맛동산이 부대끼며 뿌시럭 거렸다. 걸음은 무거운 집을 이고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했다. “얘들아 잠시 멈춰봐”목청 높여 애타게 불러도 뒤를 보지 않는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앞머리를 휘날리며 내달리지만, 발걸음은 천근만근 더욱 무겁고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헉헉 뛰면서 사소한 생각 하나가 내 마음에 훅 하고 들어왔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고, 관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평소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과자와 간식이 아침 식사가 되고, TV와 스마트폰과 사랑에 빠져 매혹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냥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퉁명스러운 짜증을 받아주고 달래주다가도 못마땅하여 분노의 화산이 폭발하여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마는 상황이 아쉬울 수밖에.       

  

그래도 다행이다. 보폭은 달라도 우리가 함께 뜀박질하고 있음이. 세월에 양탄자를 타고 아이들도 뛰고, 나도 뛴다. 아이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말 대신 가고 싶은 곳으로 뛰라고 말할 것이다. 혹여나 잠시 멈추고, 다른 곳에 한눈을 팔면 눈앞에 아이들은 희미하게 사라진다. 따라잡을 수 있는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는 거다.           


다음번에 올 때는 신인류 아이들과 이런 약속을 해야겠다.

지구인 아빠도 열심히 뛸 테니, 먼저 앞서가거든 중간중간 한 번씩은 뒤돌아 봐 달라고 


포노 사피엔스 씩씩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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