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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May 16. 2020

막내아들 김뽀송 군

막내아들 김뽀송 군

우리 집에는 의젓한 막내아들이 있다.

분홍빛으로 물들인 속살은 아기 살결처럼 부드럽고, 온몸은 산허리에 피기 시작한 메밀꽃이 뒤덮인 듯 새하얗다. 향기로운 커피색 아이라인은 잔잔한 호수처럼 동그란 눈에 동심원을 그리고. 곧게 세운 귀는 쫑긋쫑긋 주변의 인기척을 살핀다. 이내 코를 벌렁대며 익숙한 냄새를 알아차리면 꼬리가 떨어질 듯 흔들어대는 우리 집 막내둥이. 뽀송이.     


막내아들을 얻게 된 것은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오랜 육아는 아내와 두 아들(정확하게는 나까지 세 아들) 사이를 아근 바근 부대끼게 했다. 행복과 우울이 교차되는 삶 속에서 아내는 낮과 밤이 다른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했다.   햇볕이 쨍쨍 쬐다가도 느닷없이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들이치는 마음 날씨를 종잡을 수 없었다. 해가 떠있고 비가 내리면 장가간다던 호랑이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우리 집을 찾아왔다. 부부의 날카로운 신경질과 아이들 투정, 울음소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무릎을 탁 쳤다. 반려견을 데려오는 거다.

     

주워듣기로는 반려견과의 동거가 아이들의 교감능력과 정신건강에 좋다고 들었다. 심지어는 사춘기를 모르고 지나칠 정도라니 정서적으로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기쁜 마음에 냉큼 아내에게 이야기해보았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짧고 분명했다. “안돼.”

     

생각해 보면 집안 곳곳에 민들레 홀씨 되어 날릴 털과, 이불이 패드 인양 당당하게 생리현상을 해결할 녀석의 뒤처리가 걱정이긴 했다. 일용할 사료와 목욕은 기본. 털 관리, 위생관리, 동물병원 방문, 간식 챙기기. 녀석과의 동거를 망설이는 이유들로 빼곡히 차고 넘쳤다.

    

이럴 땐 곧잘 돌격 앞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 정신을 발휘한다. 아내의 허락을 받지 않고 반려견 센터를 찾았다. 1층 문턱을 넘어서자 두 단으로 꾸며진 네모난 유리공간이 펼쳐졌다. 안에는 강아지 한두 녀석들이 뒤엉켜 알콩달콩 장난을 쳤다. 새로운 인연을 기다린 듯 강아지들은 아양을 떨며 유혹했다. 한 녀석에게 시선이 멈췄다. 흰색의 덥수룩한 곱슬 털과 동그란 얼굴,“비숑”(비숑프리제)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전해진 생김새가 아주 작은 바빗과 흡사하여 바비숑이라 불렸고 비숑으로 부르게 됐다. 사람과의 사교성이 좋고, 작은 체구에 명랑하고 쾌활하며, 털 빠짐이 적은 데다 잔병까지 없다니 그야말로 내가 찾던 녀석이다. 출생 개월 수와 족보, 순종 여부에 따라 80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몸값을 했다. 아내의 허락 없이 큰돈을 들이면 좋은 소린커녕 녀석과 쫓겨날 판. 이것저것 다 빼고 그냥 부담 없이 데려갈 수 있는 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채워질 무렵.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매니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윗 층에 일반 가정에서 위탁받은 생후 5개월 된 비숑이 있어요. 한 번 보시겠어요. 뜨끔했다. 관심 법인가. 어찌 내 마음을 알았을까. 귀요미 댕이들의 잔상이 아른거린 채 맞이한 형님 비숑의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아니 별로였다. 홀쭉하게 마른 몸에 꾀죄죄한 긴 털. 허겁지겁 입안에 사료를 욱여넣는 모습은 프랑스 태생의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녀석의 몸값이 20만 원인 이유일까. 운명의 시간. 작은 녀석들은 귀엽지만 몇 달은 고생문이 훤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들의 부딪힘도 견뎌야 한다. 선뜻 내키지 않지만 형님 비숑이 답이다. 일단 비싸다고 미쳤냐는 소리는 피할 수 있다. 천방지축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맷집도 이 정도면 괜찮다.

      

나는 녀석과의 동행을 선포하듯 사진을 담아 아내에게 날렸다. 인연의 씨앗은 이렇게 뿌려졌다. 일주일만 살아보자 애원하며 데려온 막내둥이 이름은 “뽀송이”다.  첫째 민준이가 뽀송뽀송 뽀송이가 좋다며 단번에 정했다. 최뽀송은 엄마만 혼자 김 씨라 외롭다는 아이들의 깊은 마음을 새겨 김 뽀송이 됐다.

     

막내둥이와 한 이불에서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며 식구가 된 지 어느덧 2년째.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에 아이들은 마치 행복버스라도 탄 마냥 흥에 겨웠다.

살랑살랑 봄바람을 가르며 넌지시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선 버스커 버스커의 꽃송이가 흘러나왔다.

노랫소리가 귓가에 스며들 무렵. 아이들이 리듬을 타고 꽃송이를 따라 불렀다.      


동네 한 번 걷자고 꼬셔

맛있는 거 먹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 뽀송이가 (꽃) 뽀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네

(꽃) 뽀송이가 (꽃) 뽀송이가 그 (꽃) 뽀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라디오의 노랫소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뽀송이는 눈을 끔뻑대며 고개를 갸우뚱댔다.


작은 인연의 씨앗은 시간의 물을 머금고 뽀송이로 피어났다.

덕분에 가족도 꽃이 피었다. 웃음꽃이


김뽀송군이 가족 되던 날 <20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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