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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May 16. 2020

눈 속에 너를 담는다

눈 속에 너를 담는다

우리 집에는 드라마 속 초능력을 가진 소머즈가 산다. 수백 미터 밖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인간과 다른 주파수를 알아차린다. 먼 옛날 야생에서는 동물의 다양한 음역대를 구별해야 했다.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야 했고, 사냥과 적의 침입에서 벗어나야 했다. 사람보다 4배에서 8배까지 먼 거리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의 주인공은 바로 뽀송이다. 평상시 집 앞 주차장에 차를 멈추면 뽀송이에 귀가 쫑긋쫑긋하며 주변 인기척을 살핀다. 이내 기가 막히게 주인임을 알아차리면 쏜살같이 달려와 품 안을 파고든다.     


뽀송이는 애교의 왕이다. 머리를 들이대며 틈새를 파고들고, 코와 입으로 사정없이 비벼댄다. 서로에 입술이 닿으면 여지없이 핥아 대고, 퉤퉤 침 뱉는 시늉에 얼굴을 찡그려도 마냥 좋다며 안기니 예뻐할 수밖에.     


잠시 뒹굴며 어울리는 동안 눈이 마주쳤다. 서로에 바라봄은 그윽했고, 입이 아닌 눈동자로 소통했다. 뚫어져라 바라보자 마음에 길이 열렸다. 어느 순간 뽀송이에 사슴 같은 눈망울 속으로 내가 보인다. 눈동자에 비쳐 나타난 나의 형상 눈부처. 나에 눈과 코, 입, 귀가 모여 선명한 얼굴을 그렸다.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고요히 서로를 바라본 눈부처의 시간이 있었는지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거실에 있는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잠시 서로에 눈을 바라보며 말해 보자고. 어색했다. 아내의 눈을 바라보는 대화가 익숙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눈이 아닌 입을 보았다.


방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아이들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현준아! 아빠 눈 좀 봐봐! 아빠 눈 속에 현준이가 있거든.

진짜요!

잠시 아이와 그윽이 서로에 눈을 마주 봤다. 짧은 순간 나는 아이 눈 안에 나를 보았고, 아이는 나를 거울삼아 자신을 느꼈다.

아빠 눈 속에 정말 내가 있네.

거 봐 아빠 말이 맞지. 다시 한번 해보자.

에이 재미없어요. 스마트폰 볼래요.     

 

가족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동안 나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 눈을 마주 보며 말하지 못했다. 잠시 내려놓고 바라보는 거다. 눈을 들여다보면 가족이 보인다. 마음이 통한다. 눈 속에 내 마음을 담으면 비로소 가족에 눈사람이 피어난다.     


< 눈부처 >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처가 보인다

나를 닮은 모습 하나

당신의 눈 속에서 웃고 있다


눈이 아파

떴다가 다시 감으면

당신을 닮은 모습 하나 더

마주 보며 웃고 있다


서로의 가슴에서

사랑할 때의 온도로 차올라야

보인다는 눈부처는


꽃 속에서 꽃 부처가 되고

달 속에서 달 부처가 되고

꿈속에서 꿈 부처가 되어

떴다 감으면 나타나는

첫 번째 눈사람으로 피어난다.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 김남권>   



가족의 눈사람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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