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한 의류봉제 공장을 찾아 나섰다. 허름한 4층 건물에 빛바랜 벽면 타일은 빠진 이빨마냥 군데군데 파여 있었다. 묵은 때가 겹겹이 쌓인 계단을 돌아 입구에 다다르자 낯선 풍경을 마주했다. 바닥을 수놓듯 뒤널린 원단 쪼가리 사이로 윙윙윙, 따다다,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공장을 가득 메운 재단기와 미싱기(바느질 기계)는 경쟁하듯 쉼 없이 돌아갔다.
1960년대 이후 중구는 동대문 패션상권의 배후 생산지였다. 국내 패션의류제조 산업을 이끌었던 이곳은 현재 1천300여 봉제업체와 4천600여 명의 삶의 터전이다. 국내 의류봉제 산업은 활력을 잃은 채 내리막길을 걸었다. 4인 이하의 영세 사업장에는 60대의 봉제노동자들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봉제인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를 만났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적신 그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고향 친구가 봉제공장에 간다길래 무작정 따라나섰습니다. 벌써 30년 전 일이네요. 내세울 만한 직업은 아니었어도, 일은 재밌었어요. 그때는 노동환경이 열악했습니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라는 걸 몰랐어요. 노동자로서 무지했고, 권익과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박봉에 매일 밤새기 일쑤였고,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 해도 수당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았던 건 사람들이 정이 많았어요. 마음도 따뜻했구요. 사람 냄새가 났었죠. 지금은 일하려는 사람도 없지만 많이 개인화됐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이니까요.
봉제업은 노동집약 사업이에요. 모든 작업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합니다. 디자인과 재단, 단추 달기와 바느질까지 사람 손길이 닿아야 해요.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젊은이들은 이일을 기피합니다. 하루 10시간 넘는 노동을 해도 받아가는 임금이 적거든요. 노동인력의 부족과 고령화 가 심각한 상황이에요. 우리 공장에도 열 분이 일하는데 평균 나이가 60대입니다. 막내가 50 대니 말 다했죠. 그나마 다른 공장들은 외국인 노동자들로 빈자리를 메워갑니다.
원가경쟁으로 문을 닫는 공장도 늘고 있어요. 대기업 브랜드 회사에서 하청을 줄 때 공급단가를 계속 낮추라고 압박을 줍니다. 일거리가 없으면, 기계도 멈추고, 일자리도 사라지니 마지못해 계약하는 꼴입니다. 낮은 단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산원가를 줄이고, 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율을 내야 합니다. 노동 강도와 일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사람 힘을 대신해 기계화되는 거예요. 이제는 기계장비가 임가공과 핸드메이드 작업을 대신합니다.
초보 노동자의 설자리가 없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울 기회가 줄고, 초보자가 할 일도 사라지고. 넉넉히 임금을 줄 수 없으니 생산성이 높은 기술자만 선호하게 됩니다. 해외 제조 공장에서 들여오는 저가 임가공 제품 때문에 더욱 힘든 상황이에요. 베트남과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으로 경쟁합니다. 국내는 상황이 달라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조건을 준수하며 공급단가를 맞추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크고 충분한 근로 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에요.
봉제일을 하며 힘들었던 기억은? 거래처의‘갑’ 질 때문에 힘들었어요. 우리 잘못이 아닌데 콤플레인을 걸 때죠. 계약조건도 불리합니다. 보통 납품 후 3개월 뒤에나 돈을 주는데, 못 받아서 쫓아가기도 하고, 떼일 때도 많았어요. 그게 제일 힘들죠. 악덕 거래처가 납품된 옷을 트집 잡을 때도 있어요. 멀쩡한 옷을 불량이라고 들먹이죠. 단추 위치가 조금 다르다며 찍어내면 답이 없는 거예요. 돈도 못 받고, 마음에 상처도 깊어집니다.
10년 뒤 의류봉제 산업의 미래는? 여러 산업분야에 로봇 기술이 접목되고 발전해 왔어요. 봉제는 아직까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분야예요. 재단 시 사람의 눈길로 라인을 맞추고, 곡선을 그려내는 손 닿음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입니다. 미래가 다가올수록 지식산업은 AI와 로봇의 대체가 더 쉬운 반면에 봉제 기술은 사람을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기술자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공장 노동자라면 천박하게 보잖아요. 미국과 일본은 소량생산 시스템 안에서 고품질의 패션제품을 생산하는 전문가로 대접받아요. 국내 공장에서 일하는 재단사들은 10시간을 일하고 17만 원을 받아요. 그런데도 안 하려고 합니다. 차라리 8시간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낫다며 그리 갑니다. 그 일은 경험이 없어도 12만 원, 13만 원 받고 그래요. 당장은 어렵더라도 기술자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의류봉제 산업은 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여기서 주저앉기보다는 새로운 방법으로 힘을 키울 거예요. 의류봉제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공동브랜드를 만들고, 판로를 개척할 계획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응원해 주세요.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의문이 샘솟았다. 그가 말했듯 봉제공장 노동자는 천박한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문득 내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 내리쬐는 햇볕에 연신 구슬땀을 훔치던 아버지. 한 장, 한 장 벽돌을 올리다 나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용돈을 쥐어주시던 단한 사람. 주변 친구들이 볼까 두리번대며, 급하게 자리를 피하던 나는 아버지의 노동이 창피했나 보다. 어른이 된 지금 어린 시절의 생각이 바뀌지 않은 나 자신을 마주했다. 이 땅에 기술자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위해 변해야 하는 건 환경이 아닌 나에 생각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