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분명 또 나를 아프게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드라마 <알고 있지만,>

by Lucia

“눈앞의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예고 없이 내린 눈으로 순식간에 하얗게 변한 거리를 걷는 바로 지금처럼.

사랑을 할 때도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



“사랑은 못 믿어도 연애는 하고 싶은 여자 유나비와 연애는 성가셔도 썸은 타고 싶은 남자 박재언의

하이퍼리얼리즘 로맨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소개말로 요약되는 <알고 있지만,>은

2021 년 JTBC에서 방영한 10 부작의 드라마이다. 드라마는 평범한 대학생인 주인공 ‘유나비’가

남자친구와 이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가스라이팅을 일삼고,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조각상을 만들어

작품명을 여자친구인 나비의 이름으로 지은 데다가 심지어 바람까지 핀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날,

홀로 바에 간 나비는 목 뒷덜미에 나비 문신을 한 박재언과 만나게 된다.


운명 같이 만난 두 사람이지만,‘나비’라는 공통점이 있어 잘 통한 두 사람이지만, 여자친구와 추정되는 사람과 전화하는 걸 엿들은 나비는 바람피우고 있다는 생각에 말도 없이 떠나버린다. 그렇게 하룻밤 운명 같은 만남이 끝일 줄 알았던 두 사람은 또다시 운명처럼 같은 학과 선후배 사이로 만나게 된다.


나비는 우연이라고 퉁치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운명 같은 상황에 더욱 재언에게 끌리게 된다.

그건 재언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두 사람은 ‘어쩌다’ 자버리고 만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짹짹 우는 새소리가 곁들여진 정적 속에 “그럼 이제 우리 사귀는 거다..?”하는

뻔하디 뻔한 클리셰는 이 드라마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이후로 두 사람은 잠만 자는 파트너 사이가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두 남녀가 파트너로 지내는 모습을

15 금 드라마를 19 금으로 전환하면서까지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낮은 없고 오로지 밤만 존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성을 가볍게 여긴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느껴지기보다는 현실적인 청춘의 모습을

담아냈기에 더욱 집중해서 보게 만든다.


상처로 끝난 지난 연애의 후폭풍으로 사람과 사랑을 잘 믿지 못하게 된 나비는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연애는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무성한 재언을 보며 머릿속에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언에게 끌리기에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어떡하라고 나도 좋았단 말이야”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드라마 <알고 있지만,>은 청춘의 사랑과 성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사랑에 대한 불신과 연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그동안 어른들의 시선으로만 그려진 청춘 이야기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특히 사랑과 성의 관계가 모호해진 청춘의 모습과 여성의 성적 욕구를 다룬 점은 청춘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나 자신 역시 편견에 휩싸여 있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런 나비의 행동이 가족, 특히 아버지의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 남자친구에게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바람둥이인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애정 결핍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에게 끌리는 마음을 단순히 결핍으로 환원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또한 이러한 시선이 여성에게만 적용된다는 점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남성은 바람둥이여도 용인되면서, 여성은 본능에 이끌리면 결핍 때문이라고 해석되는 걸까?

드라마를 보며 나는 나 자신과 사회가 가진 이러한 편견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그동안 남성 위주, 그리고 연애라는 틀 안에서 안정적인 사랑만을 다뤘던 대중문화를

포함한 여러 콘텐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대중문화는 종종 사랑을 이상화하고, 특정한 형태의

관계만을 정당화함으로써 청춘들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간과해 왔다.

이로 인해 청춘들은 자신의 감정이 왜곡되거나 잘못 해석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더불어 이런 청춘들의 모습을 본 어른들은 말한다. 놀고는 싶은데 책임은 지기 싫은 거라고. 하지만 나는 이것이 꼭 슬픈 일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해 보일 수는 있지만, 이러한 과정은 청춘들이 겪는 하나의 성장통이다. 나비와 같은 청춘들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감정의 진폭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은 결핍도, 단순히 철 없는 행동이 아닌 한 사람의 성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제 막 걸음마 뗀 아기처럼 사회에 나가 모든 걸 처음으로 경험하는 청춘에는 항상 성공만이 따를 수는 없다. 실패와 좌절을 더 많이 겪는 것이 현실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 따위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미 끝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사랑을 찾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꾼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정말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뒤에 붙어 있는 온점 옆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왠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지닌 끝없는 가능성, 그리고 청춘의 무한한 잠재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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