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임신이라고?????”
그 당시 나이 마흔에 첫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상당히 흔치 않았다. 모든 것에 서투르고 당황하기만 하던 나의 육아를 옆에서 보던 동생은 연예인 말고서는 이렇게 노산은 없다며 놀리긴 했지만, 언니와 형부는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내 주위에서는 초롱이 하나를 공주처럼 예쁘게 키우면 된다고 했지만, 시부모님께서는 은근히 둘째 소식을 은근하지만 만날 때마다 물었고, 나중에는 내가 나이가 많아서 더 늦게 전에 둘째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눈치 아닌 눈치를 보내셨다.
남편과 나는 부모님의 희망보다는 초롱이 혼자서는 나중에 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임신 계획을 준비했다. 하지만, 임신이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이 되지 않자 나는 불안한 마음이 급해지고, 남편도 시댁에서의 재촉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렇게 더 시도하는 것은 서로에게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던 나와 남편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안되면 둘째는 우리에게 없다!” 고 결정했다. 기적은 언제나 마지막에 찾아오는 것일까? 그 마지막 순간에 초콩이는 선물처럼 우리에게 와 주었다.
둘째의 태명은 초롱이 동생이니까 초콩이라고 지었다. 남편과 나는 둘째가 딸이기를 바랐다. 나는 어릴 때는 동생과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보니 자매만큼 좋은 육아 친구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지금은 정말 친구 같이 지내는 동생이 좋아서 둘째도 딸이길 바랐다. 초롱이도 여자동생이면 좋겠다고 자기와 재미있게 놀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공주님, 오늘은 공주님의 동생이 남자일까 여자일까 선생님과 같이 볼까?”
성별을 알려주는 날, 병원에 온 가족이 초음파를 보는 방에 함께 들어와서 초콩이가 남자일지 여자일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주야, 동생은 왕자님이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초롱이는 병원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초콩이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도 남편도 내심 딸을 바랐기에 온 가족 약간은 속상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괜찮아! 딸처럼 키우면 되지!”
너무나 우울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내가 큰 일이라도 한 것처럼 좋아하셨다. 잠시나마 아들이라 속상해했던 나는 초콩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초콩이는 뱃속에서 아프거나 큰 일 없이 너무나 잘 자라주었다. 초롱이 때는 임신당뇨로 한동안 고생을 했었는데, 초콩이 때에는 임신당뇨도 없고 산모도 아기도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초콩이의 예정일은 1월 초였지만, 둘째는 몸이 힘들면 예정일보다 빨리 출산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몸을 더 조심조심했다. 자칫 무리하기라도 하면 12월에 초콩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12월 2주 차 이후 주말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만 지냈다. 그 즈음 주말에 나간 외출은 초롱이의 유치원 추첨일, 그날뿐이었다. 이전의 이야기에서 초롱이는 내가 그렇게 바라던 유치원 추첨에 “111번” 의 번호로 뽑혔다.
111번이란 번호는 우리에게는 초롱이의 유치원 추첨이 된 고마운 번호에서 또 한 번의 의미 있는 숫자가 되었다. 초콩이는 숫자 1일 가득 담긴 1월 11일 오전 11시가 넘은 시간에 엄마 아빠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선물로 태어났다.
초콩이가 태어나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출산휴가가 끝나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라고 산후도우미 이모님을 보내주셨다. 덕분에 조리원에서 퇴소한 후, 회사에 복귀하기 직전까지 산후도우미 이모님 덕분에 낮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었고, 밤에는 의외로 수월한 초콩이덕분에 통잠도 잘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 둘도 키울만한데?라고 생각이 든 것은…
출산휴가가 끝나고 복귀를 1주일 여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초콩이를 보내려고 했던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 초콩이를 못 받을 것 같아요. 지금 3,4세 아이들이 많아서 반을 나눠야 하는데, 그러면 영아를 받을 반이 없어요. 죄송해요.”
이 얼마나 날벼락같은 소리인가. 초롱이를 보내왔던 어린이집이라 알아볼 필요도 없었는데, 원장님의 전화 한 통에 내 마음이 또다시 조급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초콩이를 받아주신다고 하신 어린이집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에게는 초롱이의 유치원 하원 후 내가 퇴근할 때까지 보육을 해 줄 곳도 필요했다. 초콩이의 어린이집 원장님께 염치없지만, 초롱이의 유치원 하원 픽업부터 퇴근 후까지의 방과 후 보육을 부탁드렸는데, 원장님은 나의 간절함을 눈빛에서 읽으셨을까?
큰언니 같았던 원장님 덕분에 초롱이 방과 후 보육까지 한 번에 해결이 되었다. 그렇게 원장님과 4년간의 고마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태어난 지 70일이 막 지난 초콩이를 보낼 어린이집만 결정했을 뿐이었는데,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다시 워킹맘모드 ON! 그리고 육아모드도 함께 ON!
이렇게 나의 육아는 두 배가 아니라 이만배 힘든 육아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