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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했던 감원 피바람 후, 뒷이야기

초마의 오후3시

by 초마


"부장님, 부장님 너무 웃긴 이야기를 들었어요."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회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회사 안에서 돌아가는 소문은 항상 끝이다. 결국 내가 소문을 듣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소문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일어나기 직전의 일인 것이다.


그런 나에게 친하게 지내는 동생 같은 팀원은 늘 나름의 고급정보를 알려주곤 했다.


"이건 정말 비밀이에요! 부장님만 알고 계셔야 해요!!"


사실 나는 누구에게 이런 회사 소문을 말하고 전할 사람도 없거니와 바람처럼 소문을 불어날리는 사람도 아니기에, 가끔 그 팀원은 나에게 고급 정보를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그 팀원은 한 달 조금 더 전에 출산휴가를 떠난 상태라 그 이후로는 나에게 회사 내부의 설과 소문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회사에서는 본사 지침으로 감원설이 돌았고, 그 설은 안타깝게도 현실화가 되었다.


사실 나도 맡고 있던 업무 중 PM과 Sales 업무 둘다를 나름 잘해오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그 대상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맡고 있던 고객사에 큰 미수금이 있었고, 그 건으로 인해 회사에 적지 않은 손해가 있으니 만일 내가 대상자에 오른다면 그것은 바로 그 이유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의 추측을 하고 있었지만, 이럴 때 누가 명단의 후보에 올라있는지, 혹시 그 명단에 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내가 들었던 소문 아니 확인된 바로는 세일즈와 PM조직에서 4명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두 많은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 4명이라는 숫자는 당황스러웠다.



결국, 나는 그 피바람에서 살아남았고, 씁쓸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물론 그 여파로 나는 새로운 업무를 추가로 맡게 되었고, 나뿐 아니라 몇몇의 사람들은 자기 업무에 그만두게 된 다른 사람들 업무까지 맡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출산휴가 중인 그 만삭의 팀원과 아기 낳기 전 안부전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회사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부장님, 이번 일에 명단에 A랑 B랑도 올랐던 것 아시죠?"


"그래? 짐작은 했지만, 사실 명단에 오른 것은 몰랐어!"


"A랑 B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시키려고만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당장에 팀장에게 달려간데요.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느냐, 그러면 지금보다 연봉을 더 올려줘야 할 것이다. 나의 처우를 당장 개선해 달라! 그러지 않으면 이 업무 맡지 않겠다!' 이런 말을 계속하니까 팀장들 입장에서는 일을 시키기가 너무 힘든 거죠.. 그래서 이번 명단을 추릴 때 가장 먼저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부장님, 더 웃긴 이야기는 뭔지 아세요?"


"그래? 그건 뭐야?" 설마 회사에서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 건 아니지?"


"당연하죠!!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요, 부장님 이야기예요..."


"뭐??????"


"그 A, B와 반대로 부장님과 Z는 어떤 힘든 업무를 해달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고, 척척 해내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골치 아프거나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는 회사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 두 사람은 싫다는 소리 안 하고 '제가 해야 한다면 해야죠.'라면서 어려운 일이나 진상고객사를 맡아주는 사람들이라며, 그 A, B와 비교하는데 너무 웃기죠?"


나는 순간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렵고 힘든 고객사를 담당하고 있어서, 심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때로는 너무나 신경을 써서 입술이 부르트고, 잠도 잘 못 자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일은 나의 일이라 생각했기에 한 번도 그 업무를 맡으면서 연봉을 올려달라, 내 처우를 개선해 달라 고 팀장에게 달려간 적은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나는 결국 시키면 하는 사람인 거네, 회사에서는 좋아하겠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다른 동료들과 팀원들에 비해 항상 맡는 고객사가 평범하진 않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 자기 말만 하는 대기업의 중국공장, 담당자는 내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조선족부터 시작해서, 다시는 우리 회사랑 거래하지 않겠다는 고객사 등 평범하지 않은 고객사가 많았다. 한바탕의 어려움과 힘든 일을 겪은 후 우리 회사랑 거래하지 않겠다는 고객사는 나의 고객사 중에서 TOP1 이 되었고, 모든 담당자들과 업무 협조를 잘 받는 고마운 고객사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내가 맡고 있는 Vendor 도 처음엔 단순히 발주와 선적만 하는 건이라 마진 확보를 위해 본사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시간의 흐름에서 결국엔 우리 회사의 마진 확보를 위해 본사를 설득해 주시겠다고까지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그때마다 내가 그래도 나름 열심히 일하긴 했구나,라고는 생각을 했었다.

때로는 회사 임원들에게 내가 이렇게 해내었다고 어필을 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업무를 새로 맡게 되거나 어떤 일을 해 내었을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뭘 해달라, 내가 이걸 맡으면 무얼 해줄 것이냐고 달려온다면, 지금처럼 어려운 회사 상황에서는 사실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다 받는 다면 사실 회사는 더 많은 업무를 주게 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할 말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겠지만, 그것도 상황과 때를 보아가며 해야 하는 것을 가는 것이 오랜 직장생활에서 익힌 나의 노하우가 아닐까.



"부장님, 부장님은 처음부터 리스트에 없었어요, 그런데 자꾸 걱정하시니.. ㅎㅎㅎ

제가 이번 인사고과에서 부장님 1등으로 올렷어요...

다만, 회사가 적자가 심해서 인센티브는 올해도 없겠네요....."


얼마전 팀장과 점심을 먹으면서 들은 이야기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도 한마디를 건넸다.


"저는 제 고객사에서 미수금이 크니까 그거 때문에 문제가 될지 모르니까 걱정을 했죠."

"에이, 회사에서는 그 돈 다 받을 때까지 부장님 안짤라요, 돈 받는 그런 힘든 고객사 누가 맡겠어요? ㅎㅎ"


그럼, 나는 미수금이 완전히 변제될 때 까지 안심하고 다니는 것으로 ...

더 천천히 변제하라고 해야 하나... 순간 고민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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