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마의 문화생활
"엄마 오늘 무슨 영화 볼 거야?"
"소방관"
"나는 위키드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친구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엄청 슬프데.."
얼마 전 동생이 '소방관; 무대인사에 다녀오면서 보내준 사진에 눈길이 갔다.
주연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너무 부러웠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제부와 둘이서 시간에 관계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조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동생과 제부는 다시 예전처럼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았다.
아직 초등4학년과 유치원 초콩이가 있는 나로서는 부러울 따름이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냐는 말에 동생의 한마디는,
"언니,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어."
'소방관'의 영화는 2001년의 서울 홍제동 방화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라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초파와 언제 극장에서 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터였다.
우리는 사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예전에는 아이들 방학에 할머니집으로 일주일을 보냈을 때, 초파와 나는 거의 매일 저녁 영화를 보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크면서 학원도 다녀야 하기에 할머니집에 보낼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었기에 우리의 방학도 잠시 멈춤 상태였다.
하지만, 초콩이의 유치원 방학기간에 정말 어쩔 수 없이 2,3일을 할머니댁에 맡겨야 하는 일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그때 소방관을 보러 가면 되겠다!'
초파에게는 슬쩍 영화를 볼 것이다라고 말을 하면서 내 눈과 손은 이미 집 근처 극장의 상영시간표를 뒤져서 예매를 하고 있었다.
소방관은 현재 예매율 2위였기에 다행히 퇴근 후 적당한 시간에 큰 상영관에서 하는 일정을 발견했다.
"앗싸!"
그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다가왔다.
말은 초콩이 없이 초파와 초롱이, 이렇게 셋이서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나의 사심 가득한 영화선택이었다.
초롱이는 영 안 내켜했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사이에서 영화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영화의 시작 전에 약간 들뜬 나는 영화관 필수템인 달콤 팝콘도 주문해서 한아름 팔에 담고 자리로 들어섰다.
"엄마, 나 속이 안 좋아!"
"정말? 조금만 참아봐... 그리고 옆에 음료수 조금씩 마셔봐, 손은 엄마가 주물러줄게!!"
모처럼의 영화인데 초롱이가 속이 안 좋다고 하니 걱정이 되기도 하고, 영화 중간에 나가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전체관람가가 아니다 보니 대부분 성인들이었는데 중간에 나가면 민폐가 될까 걱정이 되었기에 초롱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다행히 초롱이는 영화가 시작되자, 속이 불편했던 것도 잊고 영화 속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도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갔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영화 소방관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례식장에서 배우의 목소리로 낭독된 소방관의 기도이다.
이 기도가 들릴 때에는 이미 나도 모르게 눈에서는 끊임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조금만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펑펑 눈물이 나는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이야기들이 다소 허구는 있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기에 나의 마음에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살리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현장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드는 소방관들에 대해서 나는 이제까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직업군? 희생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다는 멋진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면, 나의 가족이 소방관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그리고 동료를 눈앞에서 잃게 된다면, 나는 이 슬픔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을까?
아마 얼마 전 제주항공참사를 접했기 때문에 더욱 이 영화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나고, 초롱이에게 물었다.
"초롱이는 영화 어땠어?"
"엄마, 나는 정말 무서웠어, 불이 나는 것도 너무 무서웠고, 우리 집이 불나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
"그래서 항상 안전에 조심을 해야 하는 거야, 알았지?"
극장에서 처음 본 전체관람가 영화가 아닌 15세 영화를 처음 본 초롱이는 이제까지 보았던 웃기고 재미있는 어린이 영화, 애니메이션이 아니었기에 때로는 조금 지루했을 수 있겠으나, 가끔은 엄마 아빠와 함께 이런 영화를 보면서 사회에 대해서, 조금씩 배워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극장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서도 아직 마음이 추스러지지 않은 나를 보며 초롱이가 말한다.
"아빠, 엄마는 아직도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