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장의 욱아일기
"엄마, 나 친구들이 생일축하카드 미리 써줬어."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생일이 아직도 한참 남았잖아!
방학이라서 친구들이 먼저 준거야?"
"응, 선생님이 생일이면 친구들이 쓴 카드로 생일축하카드책 만들어 주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가 1월에 방학을 하니까 선생님이 만들어주셨어.
나 빨리 읽어보고 싶어!!"
지난 금요일 학교를 다녀오자마자 초롱이가 자랑하듯이 선생님께서 친구들의 생일축하카드 책자를 만들어 주셨다고 말을 꺼냈다. 집에 오자마자 보고 싶다고 했지만, 그날은 초콩이 없이 초파, 초롱이와 셋이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깜짝 눈까지 내리는 바람에 생일축하카드책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토요일 저녁에서야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던 초롱이가 다시 생각난 듯이 얼른 보고 싶다고 한다.
"엄마, 이것 봐봐,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거야!"
초롱이의 생일은 겨울방학 기간인 1월이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친구들의 생일축하카드를 받은 일이 없었다. 유치원 다닐 때에는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쓴 그림과 카드를 매년 생일파티 때마다 예쁜 상자에 받아오곤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기에 초롱이도 이번 선생님의 깜짝 선물에 더 신이 난 것인 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동안 초롱이의 4학년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었다.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직접 선생님을 보고 나서도 초롱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선생님은 내 생각에 감정적으로 아이들에게 과한 면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장난이 가득한 4학년 아이들을 대하기에는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엄하게 할 필요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가끔 선생님의 감정표현이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을 했던 때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런 깜짝 선물을 보게 되니, 그동안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선생님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졌다.
그리고 이런 나의 오해는 아이들이 쓴 편지를 읽으면서 선생님께 더더욱 혼자만의 오해로 선생님을 내 멋대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죄송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선생님의 깜짝 선물은 모든 아이들의 생일에 생일 책자를 만들어 주신 것인데, 친구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은 작은 카드책자는 엄마인 나보다도 초롱이에게 훨씬 큰 행복과 기쁨을 준 것 같았다.
안녕 채영아! 나는 채영이야.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너는 미술을 참 잘해.
그럼 안녕
- 이채영-
이렇게 자기의 생일을 셀프 축하하는 축하카드로 책자는 시작된다.
아이들의 생일축하카드만 보아도 초롱이의 학교 생활을 눈으로 그려볼 수 있는 듯해서 좋았고, 선생님께 더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안녕? 나는 OOO야.
넌 2학년 땐 엄청 조용했었는데 갑자기 지금은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서 신기하다. 너의 생일에 편지를 쓰지 못해 아쉽다. 생일 축하해!
안녕? 너는 나와 2번째로 친한 베스트프렌드! 생일축하해! 안녕~~
안녕? 나 OOO야. 생일축하해! 비록 네가 장난을 좀 치지만(큼, 음...)
더 친해지고 싶어^^ 케이크도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 다시 한번 생일축하해.
안녕 채영아! 나는 OOO야. 생일 축하해. 너는 정말 장난꾸러기야.
다시 한번 너의 12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남은 시간 친하게 지내자!
안녕? 채영아 나 OOO야. 24일 정도 남았지만 방학이라 미리 생일 축하해.
그리고 수업시간에 조용히 해줘. 그럼 안녕!
안녕? 나 OO야. 너의 11번째의 생일을 축하해! 너는 엉뚱해서 재미있는 것 같아. 또 한 번 더 생일 축하해!
안녕? 채영아, 나 OOO야. 너의 12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너는 참 개구쟁이야. 너는 우리 반 애들을 웃기게 해 줘.
내년에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생일축하해.
채영아 생일 축하해. 5학년때는 4학년때보다 더 노력해 봐.
그러면 선생님한테 안 혼날 거야. 생일축하해.
채영이에게. 안녕? 나 OOO야. 너의 생일을 축하해. 너는 장난치는 걸 잘해! 넌 미술을 잘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생일 축하해!
안녕? 채영아 일단 생일 축하해! 넌 장난기가 많지만 너 덕분에 매일 웃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하고 그럼 난 안녕!
가장 놀라운 생일카드는 2학년때와는 달리 4학년 때 완전히 바뀐 초롱이의 학교생활이었다.
최근 초롱이의 고백으로 그저 학교에서 조용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은 짐작은 했지만, 친구들의 생일카드에는 너무 웃긴다, 장난을 많이 친다. 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7살 동생과 늘 함께 놀아줘서 그런지 아직도 몸으로 놀려고만 하는 초롱이는 학교친구들에게도 개구쟁이 남자아이들과 견줄 만큼 장난을 많이 치는 것을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초롱이의 고백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내가 모르는 초롱이의 모습이 참 새로웠었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초롱이는 나에게 고백한다.
"엄마, 나 엄마에게 할 말이 생각났어! 지금은 이제 안 그러는데 예전에는 나 어떤 어떤 장난을 쳤었어!!"
처음에는 엄마에게 혼날까 봐 말하지 않았던 초롱이의 고백들은 아직도 매일 이어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꼭 안아주면서 등을 쓰담쓰담하면서 말을 해주곤 한다.
"초롱아, 친구들은 이제 그런 장난 안 좋아해! 친구들 물건에 손대지 말고, 장난도 그만해야 해 알았지?"
초롱이가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는 이유는 친구들이 그래야 자기랑 놀아줄 것 같아서 그런다는 말을 듣고 놀랍기도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직 어린 초롱이의 잘못된 친구에 대한 생각이 잡힐까 봐 늘 이야기하곤 했다.
"초롱아, 친구들은 초롱이가 재미있게 웃기거나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함께 고민도 이야기하고 싶고, 놀기고 싶은데, 초롱이처럼 장난만 심하게 치고, 웃기려고만 하면 친구들은 초롱이에게 고민을 이야기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친구들에게 심한 장난은 그만 하기야!"
이전까지만 해도 초롱이는 친구에 대한 마음을 잘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4학년이 되고나서부터 조금씩 친구와 노는 재미도 알게 되고,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가고 싶기도 하고, 친구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하려고 계획도 짜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친구들과의 노는 재미를 알아가는 것 같다.
항상 옆에 좋은 친구들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의 생일카드를 보면서 초롱이가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일지 아니면 장난만 치는 나쁜? 친구일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이제 벌써 12살이 된 초롱이의 5학년은 더욱 다채로운 일들이 많이 펼쳐질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될 수도 있는 시기이기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이 없이 좋은 친구들과 쭉 우정을 이어갈 수 있길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들에게도 초롱이가 베스트프렌드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