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장의 육아일기
"보온도시락을 사야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초롱이 점심이 가장 걱정이니까, 괜찮은 것으로 하나 골라보오!"
초파와 나는 이제부터 시작된 두여달의 길고 긴 초롱이의 겨울방학이 걱정이다.
이전까지의 겨울 방학에는 어머님께서 월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오셔서 초롱이와 우리 가족의 아침, 점심과 저녁을 함께 챙겨 주시곤 했다. 그리고 금요일 점심 이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는 일정으로 방학을 보내왔었다.
이전에는 방학이면 아이들을 시댁에 보내곤 했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고 크면서부터 방학에도 학원을 다녀야 하기에 어머님께서 우리 집으로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시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크면서 조금 더 편해진 것도 있고 더 힘들어진 것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어머님은 초롱이와 초콩이의 재롱과 웃음을 보기만 해도 좋아서 내심 방학을 기다리시는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 할머니 미역국이랑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어요!"
"할머니, 할머니 밥은 너무 맛있는데, 엄마 밥은 퍽퍽하고 이상해요!"
"할머니, 할머니 된장국 너무 좋아요!! 오늘 아침은 된장국이랑 계란말이 먹을래요!"
이렇게 할머니에게 매번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하고, 눈 뜨자마자 할머니에게 달려가서 오늘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는 초롱이와 뭐든지 다 잘 먹는 초콩이를 보면 할머니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길고 긴 초롱이의 겨울방학에 할머니와 오전 시간을 보낸 후 초롱이가 학원으로 가면, 어머님은 집에서 TV를 보시기도 하고 집 앞 공원에 운동을 나가시기도 하면서 몇 시간의 자유시간을 누리신다.
사실 이때 어머님이 빨래도 다 해 놓으시는 것이 미안해서 나는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빨래와 건조까지 다 해놓아야 하는 피곤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아이들 밥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었다.
그렇게 작년에 길고 긴 겨울방학을 보낸 후, 주중에 혼자 보내신 아버님은 이전과는 달리 어머님이 해 놓으신 밥도 거의 드시지 않고, 밖에서 짜장면을 가끔 먹거나, 라면만 드시거나 그렇게 부실한 식사를 하시면서 몸무게가 6Kg이나 빠지셨고 입맛을 잃어버리셨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시기에 혹여 큰일이라도 날까 영양제도 맞고, 몸에 좋다는 비타민 홍삼이니 이것저것 다 드셨지만 한번 달아난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님이 드시는 양은 초콩이 보다도 작아서 걱정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서야 아버님의 밥맛은 다시 돌아오셨고, 그 이후로 나는 초롱이의 방학에 어머님이 와 달라는 부탁은 꺼내지 않았다.
이번 여름 방학은 1주일 정도라, 초롱이에게 김밥도 배달하고, 가끔 점심에 후다닥 들려서 같이 먹고 가기도 하고, 때로는 반찬을 준비해 두고 혼자 꺼내서 차려 먹기도 하면서 보냈었다.
문제는 이번 겨울방학은 그렇게 보낼 수 없는 너무나 긴 2 달이라는 사실에, 남편과 나는 초롱이 혼자서도 먹을 수 있도록 보온도시락을 싸주기로 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런 보온도시락을 2개씩 싸서 다녔다는 생각에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나와 동생의 도시락까지 4개씩 싸주었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엄마는 점심과 저녁 도시락 반찬도 김치를 제외하고는 겹치는 반찬이 없게 싸주었던 것을 나는 이제야 기억을 해 낸 것이다.
나는 말로만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하기만 했지, 실상 엄마의 발가락만치도 엄마 같지 않은 엄마임을 반성하는 순간이었다. 그저 내가 느낀 엄마는 나와 잘 이야기해 주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었기에 나는 엄마가 때로는 친구 같아서 좋았고, 때로는 너무 멋진 엄마여서 자랑스러웠고, 늘 엄마를 닮고 싶었었다.
그런데 그건 엄마의 겉으로 보였던 모습만을 따라 하고픈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우리를 키워왔는지, 이 사소한 보온도시락 하나로 이제 조금 알아갈 것 같다.
나중에 초롱이에게 나는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노력해 보고 싶다.
엄마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듯, 나의 마음도 나중에는 초롱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맛있게 먹어야 할 텐데!!
뚜껑은 안 흘리고 잘 열 수 있을지.. 참.. 별게 다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