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마의 오후3시
"엄마, 나는 그레이, 엄마 나는 네이비!!!"
"초마, 나는 남은 것 중에 하나 떠주시오!"
이렇게 야심 차게 올 겨울이 시작되기 전 우리 가족의 패밀리 모자를 뜰 것이라며 호언정담을 했다.
평을 보니 아들을 위해 떠 주었는데 하루 만에 떴다는 분도 계시고, 이틀 만에 떴다는 분도 계시길래, 나는 일주일이면 뭐 충분하겠지라고 나의 뜨개 솜씨를 아주 과대평가한 것이다.
이 만큼의 길이까지 뜨는 것도 사실 마음 잡고 드면 시간이 더 절약될 수 있었겠지만, 뭐 하다가 보면 조금씩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한동안은 잊고 지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책탑 사이에서 이 뜨개 파우치를 발견하고서는 어젯밤에 다시 시작하는 나를 보고 초파가 말한다.
"올 겨울에 쓸 수는 있는 거야?"
원래의 목표는 12월 31일 속초로 해돋이 여행을 떠났을 때 온 가족 모두 함께 쓰고 있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늘 같은 핑계, 회사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회사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초롱이가 아파서 어쩌고 저쩌구등의 변명 같은 일들 핑계로 나의 계획은 그저 홀딩상태이다.
사실 이 실을 준비하면서 이 모자를 뜨기로 결정했다 때보다 나의 의욕이 조금 사그라든 것은 사실이다. 회사일도 버거우면서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모자를 뜨는 것보다 그냥 인터넷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싼 거 아닌가?
그리고 모자도 내가 뜬 것보다 사는 게 더 따뜻하고 예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갑자기 뜨는 것에 의지도 꺾이고 하고자 하는 마음도 사라졌던 것이다.
"언니, 이 목도리 윤경이가 뜬 거야! 정말 너무 잘 뜬 거 아니야?
아니 윤경이가 원래 손재주가 좋았었잖아... 예전에 학교에서 저고리를 만들어서 가져왔는데 아니 부직포로 만든 저고리가 너무나 예쁘고 정교한 거 있지? 그때부터 내가 알아봤다니까!!
그리고 뭘 하나 시키면 손끝이 야무져서 못하는 게 없었던 건 언니도 알지?
요즘 회사에서 바빠서 맨날 늦게 들어오는데, 밤에 피곤할 텐데 잠도 안 자고 인터넷으로 뭘 보고 하더니
이렇게 내 목도리를 하나 떠준 거 있지? 가운데 이 모양 보이지? 색도 그렇고 정말 너무 좋다 언니!
언니도 하나 떠달라고 할까? 내가 말하면 또 떠줄 거야.. 숙모 거도 하나 뜨라고 말할게!!"
엄마는 별거 아닌 나를 정말 대단하게 말하곤 했다.
중학교 가정시간이었나? 학교에서 수업으로 저고리를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엄마는 내가 만든 저고리에 푹 빠져서 너무 잘 만들었다고 그 저고리를 온 동네방네 친척들에게 다 자랑하고 다니셨다.
나는 오죽 자랑할 게 없으면 엄마는 저고리 만든 걸 자랑하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했는데, 엄마에게는 나의 저고리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은 십수 년이 지나고, 엄마와 내가 둘이 살 때였다.
집은 갑자기 꼬끄라지는 드라마틱한 시간들이 지나갔고, 이제는 아주 작은 집에서 엄마와 둘이 지내며 어느 정도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을 때쯤이었다.
나는 이제까지의 힘들고 고생을 했던 것에 대한 보상인양, 늘 밖으로 쏘다니녔고, 매일 엄마는 집에 혼자 아니 엄마를 쏙 빼닮은 강아지 난이와 함께 멍하니 있었었다.
어느 겨울, 나는 갑자기 엄마에게 목도리를 떠서 선물했다. 그때도 아마 엄마에게 이제까지의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엄마에게 춥게 다니지 말라고, 건네준 팥죽색의 목도리였는데 그 목도리가 엄마에게는 또다시 자랑거리가 된 것이다.
그냥 밋밋한 목도리였지만, 가운데 무늬를 넣은 목도리였다. 인터넷을 보고 동영상을 보면서 떴던 목도리라서 처음에는 몇 번을 풀었다가 떴다가를 다시 했던 목도리긴 했지만, 엄마가 좋아하시는 것이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는 요즘처럼 유튜브 같은 영상이 없었기에 판매자가 올린 영상을 보고, 계속 돌려보면서 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대였다.
엄마는 그 목도리를 정말 너무나 좋아하셨고, 엄마는 그 목도리를 아주 오랫동안 엄마의 목에 늘 하고 다니셨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에게 다른 색으로 하나 더 떠드리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바쁘니까 내년에 더 좋은 것으로 해 드려야지 하면서 미루기만 했다. 사실 미룰 것은 전혀 없었던 핑계였는데, 그저 그 순간에 하기 귀찮으니까 회사 일이 바쁘다 지금은 피곤하다 내일부터 해야지, 그런 핑계로 매일 미루다가 하나 더 떠 드려야지 하는 목도리조차 엄마에게 주지 못한 것이 또 내 마음에 콕 박힌 것이 생각났다.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고, 해 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내 손을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서 어릴 때는 목도리도 떠주고, 모자도 예쁘게 떠주기도 했다.
실제로 초롱이와 초콩이 모두 내가 떠 준 모자로 신생아때부터 쭈욱 모자를 쓰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뜨개를 배우며 조금씩 솜씨가 늘어서 아이들 조끼도 만들어 입히고, 주위에서 알아봐 주는 선생님들의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뭔가 아주 뜨개를 잘하는 것처럼, 그래 난 이 정도는 다 할 줄 아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 같다. 사실은 아직도 할 줄 모르는 나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초롱이의 망토를 뜨던 중, 뜨개방 선생님께서 그만두셨고 그 핑계로 나도 자연스레 뜨개와 멀어지게 되었다. 몇 년 후 다시 뜨고 싶어서 손을 까닥 대긴 했지만, 역시 어려운 것은 할 수 없을 것이란 마음에 지레 겁을 먹고 매번 시작도 못하고 포기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다시 아이들의 모자, 그리고 우리 가족의 모자를 떠주자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뜨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숭숭 떠지지 않기에 잠시 멈추며 떠 가고 있지만, 난 뜨개바늘을 잡을 때마다 엄마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언니, 이 목도리 말이야. 정말 잘 뜬 거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