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추억
"나는 그냥 AK플라자에서 비싸고 맛있는 과일 먹을 거야!"
엄마는 늘 AK플라자의 과일을 좋아하셨다.
내가 결혼 후에 혼인신고를 하면서 엄마의 등본에서 내가 떨어져 나가게 된 후, 엄마는 드디어 판교의 임대주택에 붙을 수 있었다.
그전까지 엄마는 판교 임대주택에 몇 번의 도전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 보면 소득이 있는 내가 엄마와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임대주택의 선정 조건에 맞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혼인신고를 한 2013년 12월 24일, 그 즈음 엄마는 마지막 도전이라며 판교의 임대아파트에 다시 신청을 하셨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성공! 엄마의 아파트가 판교의 한가운데 생긴 것이다. 비록 임대아파트라고는 해도 위치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이전에 신청했던 곳에 비하면 엄마가 당첨된 아파트의 위치는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현대백화점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아파트 단지 바로 옆 탄천을 건너면 바로 AK플라자까지 걸어서 30분 정도로 다녀올 수 있으니 산책 겸 가벼운 장바구니 하나 들고 어디든 다니기 좋은 위치였다.
그렇게 엄마는 엄마의 아파트에서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다.
때로는 밥 하기 귀찮다고 현대백화점에 가서 혼자 점심을 먹고 오거나, 날 좋은 봄날 늦은 오후에는 산들거리는 햇살과 바람을 즐기며 AK플라자에 가셔서 지하 식품관을 구경하기를 즐기셨다.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곳은 바로 AK플라자의 과일코너였다. 사실 다른 곳에 비해서 과일은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그 맛은 정말 너무 맛있어서 역시 백화점 과일이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물론 근처에 있는 현대백화점도 과일은 충분히 맛있었을 텐데, 엄마는 늘 AK플라자의 과일을 좋아하셨다.
"엄마, 과일은 이마트도 괜찮고,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맛인 괜찮던데?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으면 되잖아! 갈 땐 가더라도 올 때 과일까지 들고 오려면 힘들지 않아?
그럼 차를 가지고 가던가!"
나는 무겁게 과일까지 사가지고 오는 엄마가 걱정되어 인터넷으로 주문해 준다고 했는데, 엄마는 늘 손사래를 치곤 했다.
"그 정도 과일은 충분히 가지고 올 정도는 되니까 걱정 마!
그리고 인터넷으로 사지 마! 어차피 혼자서 다 먹지도 못하고, 맛도 없어!"
나는 괜히 엄마가 걱정이 돼서 과일을 사 보내준다고 했는데 엄마의 뾰로통한 말에 화가 났다.
"엄마, 쿠팡과일도 얼마나 맛있는데, 그리고 컬리는 정말 맛있는 과일만 엄선한다고!"
"아니야, 나는 그냥 AK플라자 과일이 제일 맛있으니까 그냥 사지 마!
네가 보내줘도 난 안 먹을 거야!"
그때는 그냥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게, 이제까지의 엄마의 힘들었던 삶의 보상 중의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이제 현대백화점에서 밥도 먹고, AK플라자에서 먹고 싶은 과일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엄마는 소소한 행복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엄마에게는 아무리 무거운 과일이나 식품관 장바구니도 걸어오는 내내 무겁지 않았을 것이고, 집에 와서
는 그것보다도 더 맛있는 과일은 없었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최고의 플렉스였던 그 쇼핑이 나는 AK플라자의 식품관을 갈 때마다 엄마생각을 하게 하는 추억버튼이 된다.
사실, AK플라자의 과일은 실제로도 맛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식품관은 근처에 있는 다른 백화점보다 훨씬 잘 되어 있기에 나도 아이들과 조금 특별하거나 맛있는 과자나 과일이 없나 할 때 들르곤 한다.
그리고 입구에서 달콤한 과일을 진열하고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한성질여사가 과일 시식을 하면서 장바구니에 과일을 담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1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나는 AK플라자의 식품관에 들어설 때마다 엄마의 모습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리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나의 뒤로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나 이 과일 사줘!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
"엄마, 이거 너무 맛있어, 지금 당장 사자!!"
"아이고, 아이들이 정말 과일을 좋아하나 보네요....."
가끔 과일 시식을 할 때면 초롱이와 초콩이는 그 앞에 서서 계속 과일을 먹고 있기에 어쩔 때는 미안해서라도 과일을 사야 할 때가 있다. AK플라자의 과일코너에서는 초초남매는 항상 멈추어 서서 과일을 먹고 있기에 손을 잡고 이제 그만 가자고 하는데도, 맛있다며 계속 과일을 사자고 조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 뒤로 웃고 있는 것 같은 엄마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