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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모르는 할아버지가 초콩이를 안았어!

배부장의 육아일기

by 초마



"엄마, 모르는 할아버지가 초콩이를 안았어!"


햇살 따사로운 주말 우리는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음날 여행을 떠나기 전 트렁크에 있는 짐들을 비워야 하기에 나는 차를 지상주차장 쪽으로 몰았다.

주차장을 돌아 아파트 입구 쪽으로 차를 주차하려고 하는데 초롱이와 초콩이의 친구 가족이 외출하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외쳤다.


"어? 저기 A랑 B가 있다!!"


A와 B는 초롱이와 초콩이의 친구이자 우리 아파트의 위층에 사는 남매이다.

초롱이의 친구 A는 아직 한 번도 같은 반은 되지 않았지만 지난겨울방학 줄넘기 특강을 하면서 친해진 같은 5학년이고, 초콩이의 친구 B는 같은 유치원을 다니고 지금은 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니는 1학년 친구이다.


"엄마, 나 지금 내릴래! B한테 인사할 거야!"


초콩이가 외치니 초롱이도 말을 했다.


"엄마, 나도 초콩이랑 같이 갈래! "


아이들은 친구들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지 바로 차에서 내린다고 했고,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외출할 때 돌아오거나, 공원에 운동을 나갈 때 자주 마주치는 가족이지만, 이렇게 또 예상치 못하게 만나면 아이들은 더 반가운 것을 아니까 말이다.


"그래! 먼저 인사하고 들어가!"


아이들은 내렸고, 나는 우리 아파트의 라인 앞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 앞쪽으로 주차를 해서 트렁크의 짐을 꺼내었다. 남편과 내가 짐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니 아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거실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엄마, 모르는 할아버지가 초콩이를 안았어!"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아이들이 달려들어갔던 아파트 입구에는 아이들의 친구 가족과 초롱이와 초콩이밖에 못 봤는데, 갑자기 모르는 할아버지라니? 순간 나는 아이들의 친구 할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초롱이에게 물었지만, 아이들도 당황해서 그런지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초롱아, 자세하게 좀 얘기해 봐!!"


"아니, 모르는 할아버지가 초콩이를 뒤에서 안고 엘리베이터까지 걸어왔어!"


"그러면 너는 그동안 뭐 했어!! 뭐라 왜 말도 안 해!!"


"어.... 그게...."


"혹시 A네 할아버지 아니야?"


"A는 할머니랑만 사는데......"


일단 이렇게 아이와 대화를 마치고 시간을 좀 두고 나중에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 다시 모르는 척 아이들에게 물었다.


"초롱아, 초콩아, 그런데 아까 초콩이 안았다는 할아버지는 몇 층 눌렀어?"


"어? 아무 층도 안 눌러져 있었어! 우리 집도 B가 눌러줬어!"


"아~ 그러면 B네 할아버지가 맞네!"


우리 집은 아파트 5층이고 아이들의 친구네 집은 훨씬 높은 층이기에 아이들은 B가 눌러준 5층에서 내려서 집으로 들어왔다고 하니 그 할아버지가 어디서 내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로 B네 할아버지일수도 있지만, 왜 갑자기 초콩이를 안았는지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A와 B의 부모님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사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상태라서, 한번 확인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초롱아, A에게 아까 엘레베이터에서 할아버지가 너네 할아버지냐고 물어봐!"


"엄마, 모르는 할아버지라는데???"


순간, 머리가 띵 해졌다.


"그러면 A에게 전화해서, 엄마가 물어볼 게 있다고 A 엄마 좀 바꿔 달라고 해줘!"


그렇게 A의 엄마와 통화한 내용으로 알게 된 사실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사실 저희도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찝찝해서 아이들이 자고 나면 남편과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초롱 초콩이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공동현관으로 그 할아버지가 들어온 것 같아요.

저희는 먼저 들어와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고요.


그런데, 그 할이버지가 입구에서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초콩이를 뒤에서 꼭 껴안고 뒤뚱뒤뚱하면서 들어오셨어요. 너무나 다정해서 저희는 초콩이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어요.


초콩이는 심지어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초롱이도 아무 말이 없었거든요.


엘레베이터에서 저희 아이가 누른 저희 집과 초콩이네 집 층수 말고는 다른 층도 누르지 않으셔서 당연히 초콩이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이들만 5층에서 내리고 할아버지는 안 내리셔서 남편과 저도 너무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이 '어르신 몇 층이신가요?' 하고 물었더니 7층이라고 대답하셨는데 그때는 이미 7층을 훨씬 지나고 있었거든요.

저희는 그냥 저희 층에 와서 내렸고, 그 할아버지가 7층에서 내렸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너무나 다정하게 초콩이를 대했고, 초콩이가 안고 있었던 할아버지에게 몇 초 후에 아래로 쏙 빠져나와서 탈출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엘레베이터를 타서도 계속 초콩이 볼을 톡톡 하고, 어깨동무등을 하니 저희는 초콩이가 7층 할아버지네랑 친한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남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늦은 시간이었지만, 층간 소음 문제로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었던 관리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이유로 CCTV를 열람하고 싶다는 말에 직원이 있는 시간에 오면 신청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관리실에 들러 신청하기로 했다.


남편은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지만, 나는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같은 아파트 라인 입주민인지도 궁금했고,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신중하게 하고 싶었다.


"초콩아, 그리고 엄마랑 연습 많이 했잖아! 모르는 사람이 오면 무조건 소리 지르기로!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리고 초롱이는 왜 모르는 사람이 동생을 뒤에서 안고 그렇게 있는데도 아무 말도 안 했어?

'할아버지 누구세요?'라고만 말했어도 A네 엄마 아빠가 충분히 도와줬을 텐데!"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연습을 자주 하곤 했었다. 실전처럼 연기로 시뮬레이션도 여러 차례 했었고, 아이들도 제법 잘 대응하는 것 같았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벌어지니 아이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무섭거나 어색하면 웃는 버릇이 있는 초콩이는 모르는 할아버지가 뒤에서 안았을 때 너무 무서웠지만, 바로 앞에 있던 친구 B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나 역시도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도와달라고 소리 지를 수 있을까?

아이들도 정말 무서우면 백번 천 번을 연습했어도,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직접 내 눈으로 CCTV를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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