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장의 육아일기
"어머니, 경기 서부경찰서인데요. 초콩이 사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형사님 안녕하세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에도 영업직이니 모르는 번호도 스팸의심이라는 안내문이 뜨지 않으면 다 받는 편이지만, 느낌적으로 이 번호는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것 같았다.
"어제 제가 사건 CCTV를 보고 접수가 되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네 형사님!"
"제가 가해자 할아버지도 만나보고 돌아왔는데요, 그 할아버지가 술을 좀 드셨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에게 큰 해를 한 것은 아니기도 하고....
그리고 그 할아버지 자녀가 결혼을 하지 않아서 너무 마음이 속상하다고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는데, 자식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
그래서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본인도 모르게 그렇게 살짝 안았다.. 뭐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아버님은 7층에 거주하시는 주민분으로 확인이 되었어요. 뭐..... 동네분이시니...."
사실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없어야겠지만 피해아동의 입장에서 받는 부모의 입장에서 이 통화는 너무나 기분이 나빴다.
전화 온 담당이 수사관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동네 주민이면 더 무서운 것 아닌가요? 그리고 아이들 친구 부모님 이야기로는 분명히 술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했어요."
화가 났지만,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수사관에게 전했다. 내가 그 당시에 느꼈던 뉘앙스는
'동네 할아버지가 귀여워서 아이를 한번 안은 것 같은데, 그냥 이해해 주시고 넘어가시죠!'
이런 뉘앙스로 들렸었다.
"그럼, 초콩이 어머님은 그냥 사건 접수를 하시겠다는 거죠?"
"네,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한 것인데 이게 끝인가요? 그리고 제가 사건 CCTV를 직접 보고 싶은데요."
"아, 네, 그러면 직접 용인*경찰서로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24시간 근무라 오늘 밤에 오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엔 제가 일이 있어서 방문드릴 수 없는데, 내일 방문드릴께요."
"내일은 제가 쉬는 날이라, 안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건이 아동추행이라 바로 넘겨야 하는 건이라 오늘 밤에 오세요. 24시간 근무이니 늦게라도 괜찮습니다."
"형사님, 제가 오늘은 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 사건 있고 나서 초콩이가 너무 무서워해서 밤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 밤에 가려면 아이들을 집에 두고 가야 하는데요? 밤 10시 넘어서 아이들만 둘이 두고 가나요?"
"그러면 남편분이 집에 계시고 어머님만 오셔서 보면 되지 않나요?"
"형사님, 이 사건 CCTV는 부모인 남편과 저 둘 다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내일이나 아니면 모레 방문 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제가 이 사건을 바로 넘겨야 합니다. 아동추행은 바로 넘겨야 해서요. 경기남부경찰서에서 전담으로 하니 거기서 확인하세요. 저는 바로 넘기겠습니다."
얼렁뚱땅 전화를 끊긴 했지만, 기분이 정말 나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그냥 가벼운 사고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수사관의 말투가 전화상으로 그대로 전해져 왔기에 나 역시 내가 너무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네 할아버지가 아이를 뒤에서 한번 안은 것으로 경찰에 신고까지 할 일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아이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가 뒤에서 안고 엘리베이터까지 5,6m를 걸어갔으니 그때의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경기남부경찰서에서 진행이 되었다.
2일인가 지난 후, 아침 출근길에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초콩이 어머님 되시죠? 저는 경기남부경찰서 OO형사입니다. 이번 사건 접수가 되어서 연락드렸습니다. "
"네 형사님, 안녕하세요!"
"사건 접수가 되어서 초콩이가 경찰서에서 진술을 해야 하는데, 아직 어리기 때문에, 경기남부 해바라기센터에서 진술을 받으려고 합니다. 경기남부 해바라기센터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여성 혹은 아이들의 경우 친숙한 여자경찰과 상담사분이 함께 동석하셔서 진술하는 것이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어머님과 초콩이가 방문 가능한 날로 예약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몇 번의 일정 조율 끝에, 우리는 경기남부 해바라기센터에 초콩이의 진술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진술하러 가기 전,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초콩이와 단 둘이 차에 있는 시간을 틈타서 초콩이에게 물었다.
사실 초콩이가 그 사건을 아직 기억할지, 아니면 어떻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초콩아, 저번에 주말에 어떤 할아버지가 초콩이 뒤에서 안았잖아! 그때 기억나?"
"아~니!"
"초콩이 잘 생각해 봐! 저번 주말에 할아버지가 뒤에서 안았던 것 기억나? 엄마가 그 할아버지 잘못했으니까 경찰서에 신고했어. 그래서 초콩이가 말해주러 가야 해."
"엄마, 기억나, 그런데 경찰아저씨한테 가서 말하는 것 무서워."
"응, 초콩이 잘못한 것 없으니, 절대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초콩이 무서우니까 친절한 여자경찰분이 초콩이에게 물어보신데. 그러니까 절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다 같이 있을 거야!"
"그런데 초콩이 지금은 괜찮아? 무서운 것 없어?"
"엄마, 나 그런데 무서워!"
"나 혼자 엘리베이터 타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나 혼자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을 때 또, 그 할아버지가 나타날까 봐 무서워!"
"초콩아, 그러면 너 맨날 태권도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바로 안 올라오고 계속 엄마에게 전화하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거야?"
"응, 엄마......"
순간, 내 마음에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목이 콱 막혔다.
이제까지 나는 초콩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서 그저 나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초콩이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고, 그저 엄마 속상할까 봐 무섭다는 말도 못 하고 빙빙 돌려서 나에게 SOS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저 초콩이에게 좋은 엄마, 좋은 친구가 되어주리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작은 신호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왜 다시 집에 못 올라오고 엄마에게 자꾸 전화하냐며 다그치기만 한 내가 너무너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