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바쁘신 것 알지만 죄송하지만,,,,초롱이가요…”
나는 반도체 세일즈를 20여 년 넘게 하고 있는 워킹맘이다. 초롱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당시에는 내가 진상이라고 말할만한 고객사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하루에 100여 통의 통화는 통상적인 일이었다. 짧게 끝나는 업무전화도 있고, 자기의 업무에 불편함을 나에게 토로하는 컴플레인성 통화,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한 부탁의 통화, 회사 내부에서 업무 확인을 위한 통화 등 많은 업무의 건으로 늘 내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때로는 너무나 받기 싫은 전화도 있었고, 아주 가끔은 그런 전화는 통화거절을 눌러서 잠시 회피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에는 더 폭풍 같은 컴플레인을 감내해야만 했지만, 때로는 그 순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통화거절을 누를 수 없는 전화가 있었다. 바로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원장님의 전화였다.
“어머니, 친구들이 모두 집에 가서 그런지, 초롱이가 자꾸 울어요..”
“어머니, 초롱이가 지금 열이 나는데, 지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초롱이를 낳고 6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회사로 복귀를 했다. 초롱이가 다니게 될 첫 어린이집은 동생이 조카들을 보냈던 어린이집으로 미리 연락을 해 두었기에, 어린이집을 어디로 보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따로 할 필요는 없었다. 초롱이의 첫 어린이집은 조카들이 다녔던 어린이집이었고, 동생 역시 연년생 세 자매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면서 직장을 다녀야 했던 힘든 시기를 함께 해주셨던 어린이집이었다. 다행히 원장님은 7~8년 전의 조카들을 기억해 주셨고, 다시 초롱이의 엄마인 나도 동생처럼 워킹맘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기에 큰 의지가 되었다.
다행히 초롱이는 어린이집으로 적응기간을 가지는 동안, 나보다도 원장님을 훨씬 더 좋아했기에 때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내심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만 있던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초롱이는 나와 함께 있었던 집의 조용함과는 다른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가득한 어린이집의 공기를 더 좋아했다. 걷기 시작한 때부터는 어린이집에 가면서 가지 않겠다 실랑이한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으니, 사회생활의 첫 발은 스스로 잘 내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린이집을 좋아하는 초롱이에게도 어린이집 원장님이 나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었다. 바로 단풍이 떨어지고 난 나뭇가지가 앙상한 11월의 4,5시 정도의 으스스한 가을날이면 어김없이 원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 초롱이가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후, 창밖을 보면서 계속 울어요…”
그때는 회사를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매번 상사에게 조금 일찍 퇴근하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회사에서 계속 늦게까지 모여 회의를 하고 매출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기에,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매번 집에 갈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으면서 나는 승진 대상에서 계속 누락되었고,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도 계속 뒤로 밀려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원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은 갈 수가 없어요. 초롱이에게 엄마가 금방 갈 테니 책 보고 있으라고,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1년, 2년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곧 어린이집을 졸업할 4살의 초롱이는 그동안 한 번의 큰 폭풍 같은 변화로 새로 바뀐 원장님과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새로 바뀐 어린이집 원장님께서는 나에게도 큰언니 같은 다정함을 주셨다. 11월의 스산한 오후에도 더 이상 나는 어린이집 원장님의 전화에 놀라지 않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셨다. 이는 초롱이가 어린이집 원장님의 마음을 훔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아침 8시 전에 등원하면서부터 “원장님, 오늘 아침은 뭐에요? 너무 맛있는 냄새가 밖에서부터 나요~ 배고파요!! 우리 엄마는 요리를 못하는데 원장님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라며 사랑스럽게 조잘거리는 4살의 꼬마 숙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머님, 오늘도 늦으시죠? 초롱이 데리고 집으로 가 있을 테니 천천히 오세요!”
“어머님, 이것 저녁에 가서 드세요, 집에 가서 저녁 준비하려면 너무 힘들잖아요. 아이들 점심에 먹은 것 조금 챙겨 두었어요. 초롱이는 저녁 벌써 맛있게 먹었어요!”
나는 늘 이야기하곤 한다. 초롱이는 어린이집 원장님이 키워 주셨다고 말이다…
초롱이 잘 돌봐주신 어린이집 원장님, 정말 그리고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