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 탁탁탁.
컴컴한 방안으로 도마 위 칼질 소리가 아득히 밀려 들어왔다. 자기 전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10분. 어둑한 안방 문 틈으로 기역자 모양의 노란빛이 새어 들었다. 나는 가늘게 뜬 눈을 감아 다시 잠을 청했다. 깨끗이 빨아 볕 좋은 마당에서 말렸을 법한, 부드러우면서도 까슬한 이불의 감촉과 전기장판의 온기와 보일러로 데워진 훈훈한 공기가 좋았다.
설 명절 오랜만에 내 고향 부산에 방문했다. 내 시가와 친정은 부산인데 코로나 거리두기 여파 끝자락에 큰아이의 입시가 시작되었고 나의 건강문제와 어머니의 건강문제가 번갈아 생기면서 나와 내 큰딸은 명절에 귀성을 하지 못하는 날이 잦았다. 이번 명절엔 우리 가족 넷이 완전체로 양가 부모님 댁을 찾아뵈었다.
시가에서 자고 있는데 어머니의 요리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부터 요리에 여념이 없다. 나는 시어머니의 음식을 좋아한다. 배추김치와 무김치, 연근조림, 우엉조림은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는 단골반찬인데 재료를 사서 다듬고 썰고 조리는 과정을 생각하면 허투루 대할 수 없다. 나는 요리 유튜브를 참고해 반찬을 만드는 편이라 같은 반찬이라도 할 때마다 맛이 다르다. 나는 요리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썰은 식재료의 모양새도 삐뚤빼뚤이다. 어머니의 반찬은 매번 간도 알맞고 보기에도 좋다.
아침 밥상엔 미역무침과 재래김과 간장, 생대구탕이 올라왔다. 한입 크기로 마구썰기한 무와 대구 한토막이 먹음직스럽게 국그릇에 담겨 밥그릇 오른쪽에 놓여있었다. 생대구탕의 맑은 국물은 시원하고 깔끔하다. 감칠맛에 놀라 무엇으로 간을 했는지 여쭈었더니 그 흔한 국간장과 소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느리에게 밝히기 어려운 조미료를 첨가한 것일까, 정말 국간장이 다일까. 엄마표라는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엔 미역무침도 빠지지 않는다. 이번 미역무침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장 앞바다에서 직접 캐어와 고춧가루와 미량의 젓갈, 거기에 쪽파를 잘게 썰어 무친 것인데 신선한 생미역에서 바다내음이 났다. 재래김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가스불에 살짝 구운 구멍 숭숭 뚫린 마른김에 밥 한 숟갈, 간장 약간을 올려 먹으면 밥 두 공기는 거뜬히 없어진다.
어머니는 설을 쇠고 올라가는 우리에게 돼지갈비며 생꽃게와 새우, 반찬을 여럿 싸 주셨다. 숙모님이 직접 만들어 페트병에 담은 식혜 한 병과 귤 한 봉지에 바나나까지.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구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지만 감사히 받았다. 새벽에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니 아침 9시. 얼른 어머니가 주신 꽃게로 꽃게된장찌개를 끓였다. 꽃게찌개에 쓰라며 양파 반쪽과 대파 한 조각, 무 반 개도 함께 주셔서 어머니 레시피대로,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것보다 맛이 빼어날 순 없겠지만 아이들은 연신 맛있다며 내 음식을 추켜세워 주었다.
이번 명절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귀경해 어머니는 우리와 식사를 많이 못하셨다며 끝내 서운함을 비추셨다. 차가 막힐 것을 염려해 새벽에 떠나는 우리 가족을 추운데 나와 끝까지 배웅해 주셨다. 밖은 어둡고 바닷바람이 불어 더욱 추웠다. 어머니 아버지가 차 밖에 서계신 모습을 보고 얼른 차창을 내렸다. 창문 밖에 서 계신 부모님께 잘 다녀간다고 감사 인사를 드렸다. 부모님은 차창 안으로 손을 넣어 아이들 손을 한번 더 잡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밥 잘 먹어라, 엄마 말 잘 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하셨다. 추위에 몸을 움츠린 채 조심히 올라가라 손짓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우리 차는 서울로 고개를 돌렸다. 반가움과 불편함,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면서 오랜만에 심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다음 고향 방문날을 마음으로 어림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