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시어머니가 반찬을 보내주셨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흰 스티로품 박스가 대문 앞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남편이 끙소리를 내며 박스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박스를 열어보니 갖은 반찬들이 비닐팩에 깔끔히 포장되어 옹기종기 들어차 있었다. 어머니가 반찬을 보내주시는 날에는 비닐팩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에 보내주신 음식은 우렁 강된장, 게된장찌개, 소고기장조림, 오이소박이, 멸치볶음, 미역줄기볶음, 콩나물, 여름김치, 열무김치, 낙지, 키위, 미역무침이다. 어머니댁 부엌엔 창이 없는데 하루 종일 고생하셨을 것이다.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고, 식히고 비닐팩에 담고. 흰 스티로품 박스를 사서 하나하나 옮겨 담고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주차장으로 가 차에 실었을 테고, 우체국에서 번호표를 뽑아 기다리다 주소를 쓰고 택배로 접수하기까지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무척이나 애쓰셨을 테다. 그 수고를 글로 써보니 고마운 마음이 미안함으로 가려던 걸 간신히 붙잡았다. 어머니는 아들손녀며느리가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며 만드셨을 테니 감사히 먹으면 된다. 일주일이상은 반찬 걱정 없이 편히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함은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은 감사는 없는 것과 같다. 온라인마트에서 제철 과일 여럿을 담아 보내드릴 생각이다.
나는 늘 아침으로 식빵을 올리브유에 구워 크림치즈와 계란, 야채 등을 곁들여 먹는데 오늘은 어머니가 주시는 반찬들을 넣고 슥슥 비벼 먹었다. 우렁강된장 한 국자에 콩나물과 미역무침, 그리고 내가 만들어 둔 시금치무침, 애호박볶음을 넣고 고추장 반스푼과 들기름 한스푼을 휘 둘러 비볐다. 반찬이 필요 없지만 오이소박이를 곁들여 먹었다. 오이에 부추와 당근과 양파를 채 썰어 버무려진 오이소박이는 시원하면서 아삭하다. 요리 경험이 삼사 십 년쯤 되면 음식에 이렇게 내공이 쌓일까도 싶지만 이것은 분명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한다. 솜씨 없는 어른도 많이 봐왔다. 어머니는 음식을 정성 들여 썰고, 오랫동안 다져온 눈썰미로 계량스푼 없이 음식의 맛을 낸다. 어머니의 음식과 내 음식은 재료의 모양에서부터 다르다. 어머니의 음식 속 재료들은 그 모양이 정갈하다. 야채들이 썰린 길이와 굵기가 대체로 일정하다. 요리에 정성을 조금 더 들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지방에 사신다.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뵙지 못한다.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욱 소원해졌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놓고 엄마밥을 먹는데 문득 부모님이 근거리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 없이, 아낌없이 나눠주는 가족이 그립다. 스무 살에 상경해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 스무 해를 훌쩍 넘겼다. 혼자서도 잘 산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힘든 일을 겪으면서 무너졌었고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나 역시도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지만 어떤 날엔 엄마 곁에서 하루 종일 칭얼대고, 불평하고, 누워 뒹굴다 밥을 먹고, 토닥임을 받고 싶다. 내 속엔 아직 어린이가 산다. 다 크지 못한 어린이가 웅크리고 있다. 언젠가 용기나는 날에 내 속의 어린이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
인간과 사회에 거리 두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쩐지 오늘은 어머니께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