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팔 걷어 부치고 부엌 청소를 시작했다.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대청소다.
남편과 나는 부엌 청소를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하기에 이르렀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으로 자리를 만들어 놓아두던 물건들이 흘러넘쳤고, 엉뚱한 곳에서 생뚱맞은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물건들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부엌에서의 동선이 효율적이지 못한 것도 대청소를 부추기는데 한몫했다. 우리 부부는 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커피 도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커피 도구를 일괄이 아닌 시간차를 두고 들이면서 공간이 마땅치 않아 여기저기 놓아두던 것이 동선의 비효율을 초래했다. 이번 대청소는 커피 집기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에 1차 목적이 있었다.
그라인더 옆에 드립포트와 저울을 뒀고 그 옆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그 밑 수납공간엔 컵과 원두와 필터와 설탕 따위를 배치했다. 그라인더 앞에 바스켓과 템퍼와 침칠봉을 두었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려는데 나도 모르게 '좋아. 너무 좋아'가 마음에서 터져 나왔다.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가 집을 샀던 날, 배 금은동호를 샀던 날 양손을 가슴에 얹고 '좋아, 너무 좋아' 하듯 내 마음이 흐뭇해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우리가 함께 정리한 수납장이 마음에 든다며 애순이가 관식이에게 하듯 "너무 좋아" 연발했다. 어제 하루의 노동으로 동선이 이렇게 개선되다니. 원두를 갈고 다듬고 필터를 깔고 커피를 내리는 것이 발 하나 떼지 않고 한 곳에서 가능해졌다.
내 어깨를 누르던 삶의 무게가 있었다.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고 미래가 그려지지 않은 날을 매일 맞았다. 살 자신이 없던 날, 버려진 거 같아 억울한 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날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 안개들이 완전히 걷혔다할 수 없지만. 어젠 오랜만에 묵은 먼지를 털어냈고, 오래된 콩과 벌레 먹은 쌀, 버려졌어야 할 우편물, 쓸모 잃은 물건과 찢어진 종이수납박스들을 갖다 버렸다. 세탁실 벽에 핀 곰팡이들을 싹싹 씻어내고 쓰는 물건들은 알맞은 곳을 찾아 배치해 두었다.
정돈된 부엌이 좋아 뜬금없이 팬트리를 열어보고, 세탁실도 한번 흘깃 보고, 커피 집기가 정리된 수납장 앞 식탁에 노트북을 가져와 글을 쓰고 있다. 어제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청소 한 보람이 있다.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셨다. 초록 풀이 무성한 봄의 끝자락이다. 나무들은 열매를 맺으려 꽃을 떨구었고 씨방이 조금 부풀어 올랐다. 바깥에서 어린아이들이 하교해 떠드는 소리와 은은한 햇살이 조화롭다. 곧 있으면 우리 집 까칠이천사가 온다. 둘째 아이는 천사같이 온순하다가도 예민함에 눈물을 터뜨린다. 어젯밤 자기 전 엄마가 혼낸 것이 서러워 울음을 머금고 있었다. 단단히 삐쳤는지 내 손을 슬며시 뿌리쳤다 잡아주었다. 그러곤 잠이 들었다.
오늘 간식으로 싸간 초콜릿을 잘 먹었을까. 급식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왔을까 먹을 수 없는 것들만 나왔을까. 선생님 말은 잘 알아들었을까. 하교해 오면 다정하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