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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Sep 28. 2022

전기밥솥 같은 가마도 있어요

 4학년 실기실에 모여 모두 TV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며칠 전 도재상에서 전기가마를 한 대 구입했는데, 문제는 사용설명서가 죄다 영어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나름 브레인이라 생각되는 몇 명이 모여 첨부된 비디오를 보면서 조작법을 배우는 중이다. 전기가마 뚜껑을 닫고, 고리를 채운 다음,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면 끝.

 화면 속 인물이 '참 쉽죠?'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20년 전만 해도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사람들은 '도예가'라고 하면 모두 '독 짓는 늙은이'를 떠올릴 수 있겠다. 생활한복을 입고 팔을 걷어붙여 열심히 물레를 돌리는.

 그리고 뒷마당에는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린 가마가 있겠지. 사흘 밤낮을 불 앞에 앉아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장작을 던져 넣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조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이걸 어디에서 구웠어?"

 나의 소박한 작품을 받은 친구가 '너네 집에 그런 것도 있어?'라는 얼굴이다.


 가마는 영어로 kiln인데, ㅣ이 묵음인 것 같으면서도, 묵음이 아니다. 영어학원 다닐 때, 나는 몇 번이고 바른 발음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음, Native가 아닌 이상 불가능이었다. 그래도 burner보다는 낫다.


 어떤 연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장작, 가스, 전기로 구분될 수 있다. 굽는 방식(전문용어로는 소성)에 따라 산화, 환원으로 구분될 수 있다.

 오늘은 전자만 다루도록 한다. 후자는 나름 attitude가 필요하다.

규모, 관리가 다 어렵다. 냄비밥을 잘짓는 분은 가능할 수도

 일반적으로 대학에서는 가스와 전기가마를 주로 사용한다. 개인은 선택의 문제이다.


 가스가마를 사용할 때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1. 겨울철 가스가 얼지 않게 관리하기

 2. 소성 중 가스가 부족하면, 가스통 교체하기

 3. 가스통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예전에 가스통을 배달하시던 분 모습을 잠시 상상해도 좋을 것 같다.  

 경우에 따라 가스가마가 주는 깊이, 그러니까 음식으로 비유하면 풍미 같은 것인데, 전기가마의 편리함이 뛰어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초벌온도는 750도 전후이며, 유약을 바르지 않아 겹쳐서 구울 수 있다. 초벌 후엔 기물이 옅은 분홍 빛을 띤다

 "어디에다 구운 거예요? 우리 집에 오븐 있는데, 거기도 돼요?"

 "선생님은 특별한 밥솥을 가지고 있어. 어떤 버튼을 누르느냐에 따라 죽이 될 수도 있고, 밥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엄청 높은 온도라서, 다 짓고 나면 하루 정도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뚜껑을 열 수 있지. 다음 날 작품을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거야. 게을러서가 절대 아니란다."

 

 ,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베란다에서 소박하게 작업을 하던 후배는 몇 달 뒤 이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고객님, 댁에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전기요금이 10배나 넘게 나왔는데요......"

 

 즐겁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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