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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Sep 30. 2022

도예가는 공무원이에요

 팔당대교를 건너, 팔당호를 지나 어느 작은 밭에 도착했다. 불과 몇 백 년 전에는 진상용 백자 그릇들이 가득했을 텐데, 과거의 영화는 온데간데없다.

 우리는 잡초로 무성한 그 밭에서 이것저것 돌멩이들을 들춰보았다. 간혹 운이 좋으면 빛깔 좋은 사금파리를 주울 수도 있었다.


 경기도 광주군 분원리.

 조선시대 왕실 자기를 납품하던 곳이다.

 당시 광주지방은 수목이 무성하여 땔나무 조달이 수월하며, 양질의 백토(白土)가 산출되는 곳이었다. 거기에 팔당호를 끼고 있어서, 한강을 이용한 재료와 제품의 운반이 유리했다.

 "조선시대 사옹원의 주된 임무는 국왕의 식사와 대궐 내의 연회에 쓰이는 식사 공급을 관장하는 것이었는데, 이에 필요한 사기의 제조장을 분원에 설치하고, 소속 사기장 380명을 파견, 사기 제작을 담당하게 하였다."

                              

오랜만에 책을 펼쳤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생을 가마 불만 때어도, 평생을 물레질만 하여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달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옹원의 사기장만 되면 먹고 살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하지만, 누구나 사기장이 될 수는 없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간혹 재주는 좋으나 입성할 기회가 없는 사기장은 자기 주변에 필요한 그릇을 만들어야 했다. 관아에서 몇 월  까지 몇 개하면, 날짜를 맞춰야 했다.

 문제는 자기가 먹고 살 양식도 준비해야 하고, 갑자기 수해를 입어 성이 무너지면 부역에도 동원되어야 했다. 밭을 갈다가 그릇을 만들고, 그릇을 만들다가 벽돌을 쌓으러 가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왕이(사실, 이 부분이 어느 책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증빙할 수 없음이 아쉽다) 말씀하셨다.

"사기장의 삶이 너무 피폐하니, 부역에는 동원하지 말고 그릇만 만들어서 납품하여라"

 우리는 나름대로 specialist다.


 20년 전 시아버지는 사리면이라는 지명을 가진 시골로 귀농하셨다.

 당시 나는 대학원 재학 중이었고, 시골에 내려간 날, 마당에 뒹굴고 있는 작은 파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눈에 봐도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파편들을 주워 물에 씻은 다음, 도자사 수업이 있는 날에 맞춰 학교에 가져갔다.

"조선시대 말기 조질 백자입니다. 상태가 좋은 건 아니지만, 지명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까운 곳에 가마터가 있었겠군요. 문화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유물입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상식적으로 문화재가 나오면, 모든 공사가 중단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전공자이다. 음, 나름 뿌듯했다.

 '나를 알아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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