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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Oct 14. 2022

어디 소속인가요?

도자공예와 금속공예

 "네온이 불타는 거리, 가로등 불빛 아래서 그 언젠가 만났던 너와 나, 빰빠빠~빰빠빠~우!"

 노래가 끝나고 환호성이 쏟아진다. 그 틈을 비집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자, 이번엔 도자전공이 한 번 해봐."

 "........"

 "도자전공인데요."

덩어리는 도자적, 선은 금속적으로 푼 느낌이 있다

 PJ. 강동구 H고 출신, 95학번이지만 수를 했고 소싯적 천호동 커리어가 있는 게 확실해 보임.

 난 그날 윤수일 아저씨 노래가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학은 도자전공, 대학원은 금속전공. 우리 과의 이단아. 도자에선 가장 금속적이고, 금속에선 가장 도자적으로 평가받는 후배이다.


 나는 성북구에 있는 K대학교를 졸업했다.

 일반적으로 미술을 전공하면, 미술대학 혹은 예술대학으로 단과대가 구분되는데,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 디자인 계열로만 구성되어 조형대학으로 구분된다. 우리는 각자 옷, 이미지, 자동차, 집, 주전자, 도자기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

 쇠(金)와 흙(土).

 재료를 푸는 방식에 따라 어떤 차이가 나타날 수 있을까?


 우리는 공예미술학과로 공예와 미술 사이에서 도자와 금속으로 전공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현재는 분과지만, 90년대 학번들은 몇 가지 전공 공통과목을 함께 수강했다.

 그중 하나 형태와 구조.

 금속공예 교수님 수업으로 건축, 음악, 자연물, 인공물 등의 주제에 따라,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모델링을 하는 수업이었다. 

 흥미롭게도 전공에 따라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도자전공은 덩어리를 쪼개어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주제를 풀어나갔고. 금속전공은 선과 면을 모아 덩어리를 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물론 나의 개인적 시각일 수 있다)

 해석법의 차이로 수업은 매우 다양한 접근과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나는 덩어리에 익숙한 도자전공이지만, 선과 면을 새롭게 해석하는 시간을 경험했다.


아래 두 개의 정병을 한 번 살펴보자.

좌: 청자(점토)상감(기법) 포류수금(물가풍경무늬)정병                       우: 청동(동)은입사(기법)포류수금(물가풍경무늬)정병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똑같다. 두 정병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정병은 고려시대 불교 공예품으로, 원형의 몸통에 가늘고 긴 주구와 옆 부분의 병구가 덧붙여진 형태이다. 물가풍경 무늬를 그려 넣어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두 정병 모두 국보이다.  


 "여보게, 이도공. 이건 무엇이오?"

 "스님께서 물 담는 병이 필요하시다 하여 만들고 있다오. 병구에 뚜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소만, 흙으로 만드니 자꾸 깨져서 문제 라오."

 "내가 한 번 도와드리리까?"

  며칠 뒤.

 "이도공. 내 보기에 청동으로 하나 만들어도 좋을 것 같소만. 어째, 원형을 하나 흙으로 빚어주겠소? 여러 개 만들면 좋을 것 같구려."

 "우리 무늬는 물가풍경을 그려 넣으면 어떻겠소? 당신은 백토로 나는 은으로, 그러면 쌍을 이룰 것 같소만. 허허허"

 

 사실 금속전공이 아니라 단언할 순 없지만, 우측 정병은 도자전공 관점에서 보면, 흙으로 기본형을 만들고, 주물로 떠서 제작한 것이라고 본다. 비교적 똑같은 크기의 정병이 많은 것으로 보아 단일품보다는 주물을 이용한 대량생산이라 추측된다.

 당시 상감기법은 금속공은 은입사 기법으로, 목공은 나전칠기 기법으로 표현되었고, 다루는 재료는 다르지만, 상호보완적 관계의 결과로 여겨진다.

 쇠(金)와 흙(土), 그리고 나무(木).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일찍이 윌리엄 모리스(제목 인물)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된 물건의 품질 저하와 획일화를 반대하며 성실한 손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일상의 생활도구들이 주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일깨워준 공예사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일상의 생활 도구들이 주는 아름다움.

 하지만, 공예는 실용적 기능 때문에, 순수미술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 예술과 실용의 경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공예의 본질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실용에 대한 확연한 입장 차이는 조소를 전공한 작은오빠와 도예를 전공한 나 사이에도 나타났다. 이것은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와도 비슷했으며, 약간 느낌적으로 내가 밀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훗날 작은오빠는 housing 전공으로 유학을 갔고, 지금 밴쿠버에서 직접 집을 짓는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의 1승......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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