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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Oct 20. 2022

안빈낙도(陶)의 삶

 우리 할아버지는 목수셨다.

 사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무슨 연관이 있겠냐마는 첫제사를 지낸 다음 날 새벽, 내가 태어났다. 이상하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가 몇십 년을 같이 산 할머니보다 끈끈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나의 운명은 일찌감치 정해진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는 작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예전에는 도예수업을 했지만, 지금은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조금 의외지 싶다.

 학습 부진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나의 미술적 관점에서, 아이들은 글씨를 잘 못 쓴다. 왜?

 1. 글씨를 많이 써 본 적이 없다.

 2. 소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았다.

 3. 글씨 쓰기 경험이 적고, 소근육 발달도 부족하다.

 4. 그래서, 자기가 쓴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적어도 한 번은 '흙놀이 수업'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은 언젠가 내가 이루고 싶은 '전 국민의 도예화'도 연관이 있다.

 

 흙을 자유자재로 주무르고 다루다 보면 손 힘이 저절로 길러진다. 또한 주제를 표현하면서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 아마 수학 전공자 분은 수학이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한 과목이라 말하겠지만, 미술이 수학보다 공감대가 좀 더 형성되지 않을까?


 물론, 미술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흙'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소재이며, 그리기보다는 만들기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덩어리 하나는 완성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좀 못나면 어떠랴? 그래도 내가 손수 주물러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 아니겠는가?


 여기 아이들의 작품을 한 번 감상해보자. 학년별로 주제가 다른데, 학년을 맞추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1-5-6-3-4-2

 맨 왼쪽에 있는 호랑이와 가운데 부엉이를 비교해보자. 호랑이는 당시 1학년 작품으로 비교적 균형이 잘 잡힌 정직한 작품이다. 

 부엉이는 세부묘사가 돋보인다. 크고 작은 덩어리를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하며, 앞가슴 깃털이 구조적으로 잘 묘사되어있다. 당연히 6학년 작품이다.

 깃털을 따로 붙이는 게 예쁘다고 말했더니, 손톱을 여러 개 책상 위에 만들어서 순서대로 붙이더라. 그래서 '너는 이제 하산해도 될 것 같다'는 칭찬을 해줬다.

 몇 년이 지난 지금, 1학년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기본형에 충실한 호랑이는 좀 더 자연스럽게 어흥 소리를 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줄의 쥐가 마음에 든다.

 자세히 살펴보면, 가슴에 칼 한 자루를 쥐고 있다. 아마 쥐를 만들고 난 다음, 칼을 덧붙였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형태가 살짝 밀렸지만, 그 모습이 참 귀엽다. 살짝 비껴간 중심과 미소 짓는 쥐의 얼굴이 아이가 작업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도예수업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혹시 내가 무리하게 강요한  아닐까?


 나는 안빈낙도(陶)의 삶을 꿈꾼다. 손 안에서 춤추는 점토가 즐거울 때도, 짜증 날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이내 평정심을 찾게 된다.

 나는 물욕이 있는 스타일은 아닌데, 소상팔경은 한 점 갖고 싶다.

좌: 청화백자 소상팔경 각병  우: 소상팔경도동정추월 겸재 정선

  백자토를 평평하게 밀어 한 장의 판을 만든다. 적당히 굳었을 때, 부분적으로 자르고, 몸통 부분을 세운다. 술을 부드럽게 따르기 위해 주구는 물레 성형하고, 상하좌우 균형감 있게 조립한다. 초벌 후, 코발트를 조절하여 소상팔경 중에 맘에 드는 4가지를 골라 그려 넣는다.

 겸재의 그림처럼 가을밤 뱃놀이, 벗과 나누는 시와 술 한잔, 정취가 느껴진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후난성 소수와 상수가 합류하는 지역의 경치를, 8가지 풍경으로 묘사된다. 산시청람(山市晴嵐), 어촌석조(漁村夕照), 원포귀범(遠蒲歸帆), 소상양우(瀟湘夜雨), 연사모종(煙寺暮鍾),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강천모설(江天慕雪)로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소재로 사용되었다.)

캐나다-미국-중국-일본-스페인-베트남

 나의 소박한 소상팔경이다.

 여행지에서 하나 둘 수집한 것으로, 국가마다 사뭇 다르지만, 백자와 푸른색을 선호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겠다.

 재밌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중국 도자기는 위상이 높은데, 정작 나는 마오쩌둥이 그려진 미니머그 하나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음,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가운데, 파란 컵은 Noritake 제품으로, 확실히 일본은 색감이 다채롭고 산업자기 시대를 경험으로 제품화가 잘 되어있다. 별다방 컵만 봐도 단풍국에 비해 원색적인 걸 알 수 있다.

 우측 둥근 합과 부엉이 접시는 베트남에서 구입한 것으로, 백자토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어둡고, 자체 안료를 사용해서 푸른색보다는 검은색에 가깝다. 손그림에서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느낄 수 있지만, 작은 접시를 보면서 젊은 도예가가 먹고살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긴 했다. 묵묵히 꿈을 이루어 나가길 바란다.


 나는 내가 문화적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이상은 드러나지 않을 수 지만, 은연중에 묻어날 것이라 생각된다.

 별다방 컵은 더 이상 사지 말아야겠다. 다소 격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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