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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Oct 28. 2022

분(粉)하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하다. 벌써부터 얼굴이 기는 걸 보니, 주름 몇 줄은 또 생길 기세다. 기미도 몇 개 올라오겠지. 세수를 하고 스킨을 듬뿍 바른다. 분을 칠해야 하나.

 내 화장대에는 기초화장품만 가득하다. 만약 색조화장을 한다면 라인 긋는 거 하나는 자신 있다. 몇 mm 두께를 눈꺼풀 시작에서 끝부분까지 기술적으로 정확하게 채울 수 있는데, 예쁠진 모르겠으나.


 도자기에도 거무튀튀한 본바탕을 덮기 위해 화장하는 도자기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청자토 위에 화장토 분을 발랐다 하여 분청사기(粉靑沙器)라 부른다.


  #1

 바야흐로, 고려 말 조선 초.

 저잣거리에서 오늘부터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상감청자를 곱게 던 이도공이다.

 이웃하던 박공은 칼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관가에 끌려갔다. 정국이 어지럽다.

 아니나 다를까, 황대인께서 당분간 자기소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은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얘기를 들으니, 저기 남쪽 지방은 따뜻하고 밭갈이를 해서 먹고살기에도 좋다는데, 이참에 한 번 가볼까?

그래도 내게는 도자기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어디 가서 밥벌이는 할 수 있겠지.

 

 #2

 내가 새롭게 정착한 곳은 남쪽 해안 마을이다. 이곳의 흙은 모래알이 섞여 있지만, 나름대로 막사발 정도는 빚을 수 있다. 빛깔이 칙칙한 것이 아쉬운데, 백토 분을 좀 발라볼까.

 예전 상감청자는 엄격하게 무늬를 넣어야 했는데, 여긴 어차피 작은 마을이니 내 맘대로 무늬를 넣어도 좋을 것 같다.

 옆집 사는 심 씨는 술을 좋아하니, 물고기 몇 마리를, 앞집 사는 허 씨는 부귀영화를 꿈꾸니, 모란을 가득 그려 넣으면 좋을 성싶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해안가에 왜구가 자주 출몰한다는데, 나야 뭐 싸움에 나갈 마음 없는 옹기장이로 눈에 띌까 싶다만, 하나뿐이 저 아들놈이 잡혀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바다 건너편 섬나라도 사람 사는 곳이니, 뭐 다를 게 있겠냐마는.


 일반적으로 도자사에서 분청사기를 바라보는 첫 번째 관점은, 상감청자의 쇠퇴로 인한 등장이다. 매끈하고 유리질인 고려청자에 비해, 분청사기는 투박하고 거칠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도자기는 국가의 엄격한 관리하에 강진과 부안을 중심으로 왕실에서 필요한 도자기를 집중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전국으로 흩어진 숙련공들이 새롭게 정착한 곳에서 각자의 지방색을 발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분청사기는 도자사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래 두 작품을 비교해 보자.

 좌:고려청자(간송미술관 11~12세기) 우: 분청사기(호림박물관 15세기)

 상감기법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푸른빛이 좀 어두워졌다.

 오른쪽 매병은 유난히 허리가 잘록한 느낌이 든다. 저런 형태를 만들려면, 처음에 물레 중심을 잡고 흙을 올리고, 넓히고, 좁히는 순서로 작업을 하는데, 만든 분이 좀 과감한 것 같다. 격하게 좁혔다 넓혔다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상감을 넣을 때는 평정심을 찾은 듯하다. 단정하게 돌아왔다.

좌: 분청사기 편병(리움미술관 15세기) 우: 분청사기 장군(국립중앙박물관 15세기)

 윤용이 선생님은 왼쪽 편병 무늬를 '술 한잔 걸치고 슥슥 그려 넣은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왼쪽 도공은 도자기계의 뭉크일 수도 있겠다. 그 어떤 무늬보다 표현주의적이다.

 오른쪽 장군은 물레질한 것을 옆으로 뉘어 주구와 받침을 덧붙여 제작한 것이다. 부수적인 형태를 조립하려면, 무엇보다 흙의 굳기를 신경 써야 하는데, 꽤 근면 성실한 도공이었을 것이다.

 물레질한 원형에 딱 적당한 타이밍에 조립을 하고, 화장토를 바르고, 적당히 말랐을 때 물고기를 그려 넣는다.

 

 누군가 화장토를 바르고 그 위에 선을 그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다시 작업이 하고 싶다. 가는 도구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넓은 도구를 이용하여 슥슥 긁어내고.

 처음 의도는 거무튀튀한 본바탕을 가려볼 심산으로 분을 발랐지만, 이제는 분도 무늬도 오히려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다.

 강렬한 청춘의 시기가 지나니, 중년의 여유로움이 찾아오는 느낌이다.

 더 이상 분(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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