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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Nov 18. 2022

운명을 거스르는 자(磁)

Raku

 너무 묽어도 너무 되어도 안된다.

 조바심으로 일찍 불을 해도 안된다.

 뜸 들이듯 도자기를 짓는다.

 


10년은 더 된 자료라서 출처가 불분명하여 유감스러움

 나는 전형적인 S기질의 사람이다.

 평범하지만, 규칙적인 삶을 살고, 웬만한 일에 흔들림 없는 살짝 꼿꼿한 성격이다. 그래서 어쩌면, 아주 유명해지진 못했지만, 여전히 도예가의 삶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도예수업을 할 때 주제를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공자로서 도자기 제작과정에 대한 설명은 책임감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상식이 풍부해서 가마를 2번 굽는 거 정도는 다 알고 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위한 중간 과정에 얼마나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벌은 750도, 재벌은 1250도 전후에서 소성한다.

 초벌 소성은 기물에 남아있는 수분을 태우고, 유약을 입히기 적당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재벌 소성은 입힌 유약과 초벌 기물이 화학반응하여 자기(磁器)로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재벌의 온도가 관건인데, 운명을 거스르는 자(磁)가 있으니, 바로 Raku이다.

이천 도자기축제 락쿠소성 행사

 내가 사진 속 기물이었으면, 과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자기가 되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가마 문을 벌컥 열더니, 나를 꺼내 물속에 텀벙 던져버린다.

 신이시여, 정녕 나는 누구입니까?

 대학교 2학년 때, 현재 K대 K교수님이 갓 유학을 다녀온 후 Raku특강을 했다. 그때 탄생한 나의 동지다.

 알록달록하지만, 차를 마실 수 없는 컵이다. 기물을 아무리 튕겨봐도 영롱한 구석 없이 틱! 둔탁한 소리만 난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부분은 연(硏)을 먹어서 검은색을 띤다. 기물 안쪽을 둥글게 붓질했는데, 참 순수해 보인다.

The Bowl,  Petrus Spronk

 아주 오래된 박스에서 그의 작품을 꺼냈다.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나이가 되었다.

물레로 Bowl을 만들고, 초벌한 후 재벌은 거의 생략이나 다름없고 저온에서 연(硏)만 먹인다. 그리고, 수만 번의 사포질로 표면을 다듬는다. 자세히 보면 약간의 무늬가 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굉장히 심오한 느낌이 든다. 먼지를 뽀얗게 덮어쓴 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나는 어떤 운명을 따르면서 살고 있을까?

 한 번쯤은 운명을 거스르면서, 꿈틀거리는 자가 되어야 할 텐데...... 무엇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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