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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Nov 08. 2022

대관령의 기질

도예가 권순형

어머니는 흰머리로 임영에 계시는데

이 몸은 서울을 향하여 홀로 가는 심정이여

머리 돌려 북촌 마을 때때로 바라보니

흰 구름 날아 내리고 저녁산이 푸르구나

                         <蹂大關靈 望親庭> 신사임당


 나는 고향이 강릉이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이 시는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서울로 향하는 신사임당의 마음을 잘 느끼면서 읽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마음을 잘 느끼긴 했다. 엄마에겐 좀 미안하지만, 꼭 대관령을 넘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좀 있다.

 강릉에서는 어디를 가도 저 멀리 대관령이 보인다.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꼭 넘어야 하는 목표와도 같았다. 내가 대관령을 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냐고 Yoon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넘을 수 있단다. 거꾸로,  oh! my son.


 오늘은 나보다 먼저 대관령을 넘으신 분이 있으니, 1세대 도예가 권순형 선생님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권순형(1929-2017) 강릉 출생,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학사, 서울대 교수역임

  선생님은 유난히 두꺼운 손을 가지셨다. 우리 아빠 말고는 처음으로 보는 두꺼운 손이었다. 키가 크시진 않지만, 체격이 작지도 않으셨다.

 대학원 다닐 때, 특강을 오셨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나와 동향임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부친은 경포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셨고, 지금의 오죽헌 자리가 본가 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아빠는 경포국민학교 졸업생이며, 나의 결혼 전 본적은 죽헌동 옆 안현동이다.

 그 시대에 서울대생이라니, 아마 강릉에서 비공식적으로 1호 아니실까?

 

 선생님의 전공은 응용미술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정통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록펠러재단 프로젝트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셨고, 1960년대부터 디자인 교수법으로 후학을 지도하셨다.

 우리나라 1세대 디자이너, 디자인학과 교수님들은 다 선생님의 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시각이나 공업디자인학과에 비해 도예과는 뭔가 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이 있는데, 오히려 도예가의 제자들이 디자이너라니......


 선생님은 어떻게 도예가가 되신 걸까?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시대적 상황 상 사명감도 있었을 것 같다. 그중 evening class에서 물레 수업이 가장 재밌었는데, 귀국 후 후학 양성과 함께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고 싶어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작품은 기형은 굉장히 날렵하고 기계적인 느낌마저 든다. 색감도 그 어떤 도자기보다 화려하다. 수채화처럼 부드럽게 보이기도 하고 화산처럼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기법적으로 망간, 크롬, 철 등의 산화물로 무늬를 넣고 백운석 유약을 바르는데, 두 물질 사이에는 강력한 화학반응이 이루어진다. 농도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오는데, 나는 그 부분이 참 매력적이다.


 도예가는 가마 운(運)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서 어떤 형태나 유약을 정할 때는 지극히 의도하는 데로 가능하지만, 가마에서 소성하는 단계에서는 불이 이끄는 데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흙과 물과 불의 조화.

 우리는 소성이 끝난 가마 앞에서 그 어떤 작업의 단계보다 강한 설렘을 느낀다.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큰 인물이 되셨나요? 저도 강릉사람입니다."

 선생님의 손을 잡으면서, 반가움을 한껏 드러냈더니 지도교수님마저 상당히 놀라신 분위기였다.

 내게 어떤 작업을 하는지 물어보셨는데, 도저히 미흡하여 보여드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자네는 대관령의 기질을 타고났구만."


 이번 글을 정리하면서, 선생님의 부고를 알게 되었다. 물론, 연세가 있으시니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지만, 나중에 뵙게 되면 그때는 꼭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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