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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Nov 29. 2022

깎아주세요

도예가 황갑순

 깎다.

 1. 값이나 금액을 낮추어 줄이다.

 2. 칼 따위로 물건의 가죽이나 표면을 얇게 벗겨내다.


 나는 깎는다는 말은 위 두 가지에 해당되는 얘기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다 된 도자기를 깎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게 가능해?


 사람들은 도예 작업은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이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굽지만 않으면 흙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벌을 하는 순간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된다. 거기에 재벌을 더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완료자가 된다. 내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재밌는 것은 '완료자'이기 때문에, 수 천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유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황갑순 作, 2000년대 초반

 보기에는 그저 선이 예쁘게 들어간 백자로 보인다. 그런데, 이 백자는 숨은 비법이 있다.


 대학원 다닐 때, 도예계에 갑자기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 역시 한 가지 업적을 이루겠다고, Paperclay를 만들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Paperclay를 이용한 도자표현 연구, 2004 국민대, 조미라

  내가 선택한 방법은 신소재를 개발해서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1. 도자기의 차가운 질감과 무거운 중량이 싫어서 일정량의 종이를 섞어 Paperclay를 만들었다.

 2. 넓은 판 사이사이에 퍼즐처럼 색소지를 끼우고, 둥글게 말아 형태를 완성했다. 유약으로 색을 내기보다는 소지 자체의 고유한 색을 표현하고 싶었다.

 3. 경우에 따라 종이처럼 둥글게 말았는데, 나는 그것을 Foldering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한 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절대 운명을 거스르면 안된다고 여기는 나와는 반대 방식을 선택했다. 각각의 색 고리를 하나씩 올려 결합한 후, 바깥 라인을 정밀한 그라인더로 갈아버린다.

다 된 도자기를 깎을 수 있나요?

"'빚는다'라는 표현은 참 아름다워요. 헌데, 빚는다는 말 자체는 행위에 국한되어 있지요. 저는 '제작한다'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오늘날의 도예가라면 행위를 넘어서 재료에 대한 이해, 과학적 호기심, 활용에 대한 분석 등 총체적인 지식을 가진 제작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예 작업에 사용되는 물리적, 화학적, 역학적 지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조선백자나 고려청자와 같은 개념을 떠올리면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황갑순의 '아름지기' 인터뷰 중에서, 2019


 선생님의 예전 인터뷰를 읽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포용심 없이 편협했고 심지어 선생님을 이단자로 오해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는데,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물론, 깊이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나의 30대는 작업에 진심이었고, 모든 열정을 불사르며 직진 중이라 옆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한 발짝 물러서 이런저런 작가들의 작품도 살펴보고, 새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대하는 여유가 생긴 것 뿐이다. 지금이라도 깨달음을 얻는 중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옛 어른들 말씀은 하나도 틀린게 없다.

 나는 불혹(不惑)을 넘어, 곧 지천명(知天命)이 되는데, 

무엇이든 꼭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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