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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Nov 23. 2022

도벽이 있나요?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조교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입학한 지 한 학기도 되지 않은 풋내 나는 과돌이가 뜬금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니가 궁금한 건 다 풀어주겠다는 표정으로 후배를 쳐다봤다.

"도자과에는 도벽이 있나요?"


<도벽 회의>

오후 6시, 4학년 도자실, 학년 과대 필


 며칠 전 도자실을 지나다 우연히 칠판에 쓰인 공지를 보고, 기어코 조심스럽게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짜식~순진하긴.

 자, 도벽이란 무엇이냐?

우리 아파트 정문 출입구, 2004년 완공이라 시대상이 느껴짐

 도자기로 만든 벽, 줄여서 도벽(陶壁). 하지만, 타 전공이 볼 때는 말 그대로 도벽(盜癖)이 될 수도 있겠다.

 Art wall이 가장 가까운 용어로 보이며, 최근 도예계에서는 도화(陶畵)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정말 옛날 사람이다.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2005, 이헌정 作                                                         

 며칠 전, 청계천 복원 기념으로 장통교 근처에 벽화가 새로 걸렸다 하여 구경 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대학원 동기 앵란이가 조수로 참여한 이헌정 선생님의 프로젝트여서 겸사겸사 친구들과 나들이를 나갔다.

 친구 말에 의하면, 자기는 하루 종일 판만 두드리다가 왔고, 동양화 아저씨들은 고상하게 그림만 그렸다고 했다.

 어쩌면 저 중 한 명이 너의 조상일 수 있어, 니가 판이라도 두드린 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사실 나는 개인전 준비만 아니었으면, 그 어떤 판도 다 두드릴 수 있었다.

 

  정조대왕 능행반차도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담은 왕실 기록화이며, 김홍도의 작품이다. 도예가 이헌정이 고증을 거쳐, 가로세로 30cm 크기의 도판 5,120장을 사용하여 벽화로 완성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긴 벽화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손으로 밀어 도판을 만들고 초벌 하여 채색한 후, 재벌 한다.

 사실 저렇게 unit로 나누어진 각각의 판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 unit에 금이라도 갈라치면 'A-23 수정' 이런 식으로 다시 제작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재벌 가마 안의 위치에 따라 산화도 달라서 도판이 전체적으로 똑같은 색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완성된 벽화를 보고 의견이 분분했다고 들었다.

 "이럴 거면 왜 도자타일로 제작하셨나요? 기계로 작업하면 될 것을......"

 나는 제작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똑같이 기계처럼 만들어내면 사실 분위기라는 것이 있겠냐 말이다.

 

 벽화를 손으로 문질러봤다. 어쩌면 친구가 두드린 도판일 수도 있겠지 싶었다. 잔무늬처럼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자칫하면 정조대왕의 마차가 장통교 아래 가려질 뻔했다는 친구의 설명을 들으니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때, 옆에 어떤 노신사 한 분이 엷은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근처 OO그룹 회장님이 틀림없다고, 우산을 씌워주는 경호원이 있는 노신사는 드물지 않냐며, 말하면서도 한바탕 크게 웃었다.

 참으로 즐거운 기억이다.

좌: 오만철 作                   우: 달항아리, 보물 1437호, 18세기 전반

 최근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만들고, '도자회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

 판으로 달항아리를 만들고, 환원 소성하는 방법도 같은데, 입체가 아니라 평면이라는 거지.


 개인적으로 달항아리는 달 항아리라서 좋은 거 아닌까?

 우리의 도벽이 무모해 보여도, 우리의 시대는 충분히 순수했고 열정적이었으니 말이다.

 정조께서는...... 어떤 걸 좋아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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